윤희성 수출입은행장 "정책금융, 우크라 재건 마중물 될 것"
우크라이나 재건에 국내 기업 발판 위해
폴란드개발은행과 금융협력 MOU 체결
"국제협력은행으로 발돋움시키고 싶다"
정통 수은맨..."임기 잘 마쳐 선례로"
"이번에 출장을 가서 보니, 폴란드에 다시 사무소를 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방산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재건 등 다방면에서 폴란드와 협력할 일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에게 이달 중순 윤석열 대통령 폴란드 순방에 동행한 소감을 묻자 이와 같은 답이 돌아왔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국내 기업들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국내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는 수출입은행 입장에선 정전이나 종전에 대비해 미리 '출발선'에 서 있는 게 중요하다. 윤 행장은 "정책금융은 국내 기업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27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그를 이달 24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만났다.
폴란드와의 금융협력... 우크라 재건 사업 참여 기대
수출입은행은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13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폴란드개발은행(BGK)과 3자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체결식에 참석한 윤 행장은 "에너지와 배터리, 건설 등 방산 외에도 한국 기업이 진출할 분야가 상당히 많다"며 "특히 이번 MOU에는 '제3국 공동 진출' 내용이 포함됐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 우리 기업이 폴란드 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재건 사업에 참여할 경우 BGK와 우리가 함께 금융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마셜플랜'이 유럽 경제를 회복시켰듯, 우크라이나 재건은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진단한 윤 행장은 폴란드 방문에서 BGK와의 '라포(유대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전쟁 발발 직후 가장 많은 피란민을 수용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폴란드가 전후 복구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전 세계에서 사람, 돈, 물자가 우크라이나로 쏟아져 들어갈 텐데 우크라이나와 문화·역사·혈연 등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폴란드와 손잡는 것이 우리로서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며 "향후 BGK와 협력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년 수은맨'의 과제는 수은 역할 '업그레이드'
22대 수출입은행장인 윤 행장이 앞서 거쳐간 21명의 행장들과 다른 점은 내부 출신 행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1988년 입행 이후 2021년 퇴임 때까지 수출입은행에서만 근무한 '정통 수은맨'이다. 정부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비관료 출신'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으나, 그는 "오히려 어드밴티지(장점)가 있다"며 웃었다. 윤 행장은 "임원이 되기 전 하던 업무가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 우리 신용을 설명하고 투자은행(IB)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며 "행장 부임 후 매달 해외 출장을 다녔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국 외무·재무장관, 대사와의 만남에서 행원 시절부터 몸에 밴 금융외교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큰 도움이 됐고 적응도 수월했다"고 말했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그가 꼭 해내고 싶은 일은 수출입은행의 '업그레이드'다. 조선업 등 중화학공업 수출 업무를 위해 1976년 설립된 수출입은행의 '수출진흥'이라는 전통적 제1 목표를 넘어, 선진국의 수출신용기관(ECA)처럼 국제협력은행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다. 윤 행장은 "사우디 수출입은행(Saudi EXIM)에서 우리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고 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국제사회 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상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수은 '업그레이드'를 위한 관건은 직원들의 경쟁력과 전문성 향상이며, 이를 위한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윤 행장은 강조했다. 하지만 공공기관 특성상 그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은 커다란 아쉬움이다. 윤 행장은 "국제 금융협력 분야에서 수은이 전문적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우리 직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후 목표를 묻는 질문에 윤 행장의 답은 소박하면서도 비장했다. "첫 내부 출신 행장으로서 임기를 잘 완주해 관에서 오신 분 못지않다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목표입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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