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임산부가 숨지 않도록, 아이를 쉽게 포기 않도록 제도 갖춰야"
태어나면 사람... 영아 생명 경시 인식 바꿔야
위기 임산부, 신청 안 해도 발굴·지원되도록
미신고아동 유형 분석 등 전수조사 후속 작업
2,123명. 2015~2022년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출생 미신고 아동 수다. 출생신고가 안 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 당연히 사회안전망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정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전수조사 결과 11.7%인 249명은 이미 숨졌다. 출산 당시 보호자 연령을 조사해 보니 30대가 절반 수준(1,027명)이었다. 영아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 "영아는 성인과 달리 사람이 아니란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생명 경시 사회를 꼬집었다. 아무 말을 못 해도 어른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태어나기에 이를 지켜주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 임산부에 대해선 이들이 아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 등을 통해 먼저 발굴하자고 제안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2019년 설립돼 정부의 아동정책 수립 및 아동 관련 사업(지역아동센터, 학대 예방·보호, 입양,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음은 정 원장과의 일문일답.
"상담 잘 되면 위기 임산부 마음 돌릴 수 있어"
-이번 전수조사 결과 12% 가까이 사망했다. 아동의 생명·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닌가.
"영아 유기·살해가 다른 살인죄보다 형량이 낮다는 것 자체가 '영아는 아직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보여준 게 아닐까. 과거에도 돌이 돼야 생일잔치나 출생신고를 했다. 태어나면 똑같은 사람이다. 왜 유기·살해를 당해도 영아인지 아동인지 구분해 죗값을 치르게 하느냐. 최근 영아 살해·유기죄가 폐지됐는데 인식 개선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미신고 아동을 방지하고자 출생통보제를 도입했다. 제도 안착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출생통보제로 병원 밖 출산이 늘 것이란 우려가 있다. 보호출산제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알 권리를 지킬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위기 임산부에 대한 상담을 강화하면 병원 밖 출산에서 직접 기르도록 마음을 돌릴 수 있다."
-산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게, 상담으로 원가정 양육을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가.
"원가정 성장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여러 이유로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위기 임산부들이 있다. 이런 분은 입양이 필요하지만 아이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런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유형화해 분석하는 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사유로 출생신고를 안 했는지, 신고가 늦어진 이유, 유기한 이유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촘촘한 정책을 짤 수 있다. 범부처 차원에서 이 부분을 고민 중이다."
"위기 임산부 지원 상담 전화번호 통일해야"
-위기 임산부들이 가장 바라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들은 주민센터를 찾아도 제대로 안내받지 못했다며 출산·양육에 대한 정보 제공이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로 행정안전부의 지자체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다. 정보 안내 전화번호를 통일할 필요도 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는 물론 민간기관이 운영하는 것까지 안내 번호만 여러 개다. 전화할 때마다 다른 정보가 제공될 수밖에 없다. 통일이 어렵다면 어디에 전화해도 같은 정보를 안내받게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문제인 건 위기 임산부들이 숨어버리는 경우 아닌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모든 짐을 여성만 지게 하기 때문이다. 출산과 양육이 위기 임산부만의 책임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아버지가 양육비를 같이 책임지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산모들이 쉽게 지원받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 복지는 신청주의인데, 이조차 부담스러울 수 있다. 직접 주민센터에 가서 신청하지 않아도 지원받도록 지자체가 가정방문을 통해 발굴하거나 병원에 안내 브로슈어를 두는 등 관련 정보를 쉽게 얻게 해야 한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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