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평양에 간 러 국방장관... 커지는 무기거래 의혹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군사대표단이 25일 평양에 도착했다. 6·25전쟁 정전(停戰) 70주년을 맞아 27일 평양에서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하고 김정은도 만나려고 사흘 일정으로 북한을 찾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1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 국방 수장의 외국 방문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북·러 간 무기 거래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방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쇼이구 장관은 26일 강순남 국방상과 회담을 갖고 “북한은 러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라며 “오늘 회담이 양국 국방부 간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북한은 전날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군 총정치국장, 박수일 군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보내 쇼이구 장관을 영접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제국주의자들의 전횡에 맞서 싸우는 러시아 군대·인민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표시했다”고 했다. 러시아 군사대표단의 방북은 2019년 7월 이후 4년 만이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 당국에서는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전에서 사용할 무기를 이미 공급했거나 공급하려는 정황이 있다”고 줄곧 의심해 왔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엔 백악관이 무기 거래 정황으로 의심되는 위성사진들을 잇따라 공개하며 “북한이 러시아 민간 용병 회사인 바그너그룹에 식량 등의 대가를 받고 무기(포탄) 인도를 완료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자작 낭설’이라며 강하게 부인해 왔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북·러 간 무기 거래가 가시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불리해진 전황(戰況) 속 국제사회에서 비빌 언덕이 사라진 러시아가 북한에 돈·식량·에너지를 조건으로 무기 지원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군수 보급품 같은 비살상 무기를 대거 지원하거나 북한이 강점이 있는 건설·복구를 위한 공병 부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앞서 러시아 매체들은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한 의용군 파견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6·25 정전 70주년을 계기로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구도가 다시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번 기념식에 전통 우방인 중·러 고위급을 나란히 초청했다. 중국에선 리훙중(李鴻忠)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대표단을 이끌고 26일 방북했다. 크렘린궁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러시아 국빈 방문 이후 7개월 만이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첫 방중(訪中)이다.
북한이 27일 자정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군사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대량살상무기와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신형 무기를 등장시키고, 중·러가 이를 용인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할 가능성도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북한의 핵 폭주에도 불구하고 제재·규탄 논의에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전직 외교부 고위 간부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 핵 개발 용인은 과거 중·러도 찬성했던 대북 제재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했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중·러는 북한의 위협적 불법 행동을 자제시키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수 있도록 권장할 수 있는 잠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할을 촉구했다.
한편 김정은은 25일 6·25전쟁 참전 중국군 묘지가 있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참배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김정은은 “조·중 두 나라 인민이 피로써 쟁취한 승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거대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혈연적 유대를 맺은 두 나라 단결의 역사와 전통은 굳건히 계승될 것”이라고 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로 6·25전쟁 중 미군 폭격으로 사망해 북·중 친선의 상징적 인물이 된 마오안잉(毛岸英) 묘지에는 꽃송이를 진정하기도 했다. 이날 참배에는 김여정과 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조용원 조직비서, 강순남 국방상, 최선희 외무상 등이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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