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가 달라졌어요
“준비됐나요(Are you ready)!”
“예(Yeah)~!”
클럽 DJ처럼 차려 입은 배우가 소리치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환호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저녁 개막 2일차인 뮤지컬 ‘히어 라이즈 러브(Here Lies Love)’ 공연이 열린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브로드웨이 극장. 천장 위 한가운데 지름 약 1m의 초대형 미러볼이 번쩍였고, 색색깔 조명이 정신없이 사방을 휘저었다. 이곳엔 모든 관객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무대는 없다. 가장 비싼 VIP석에 해당하는 ‘플로어 스탠딩(floor standing)’ 티켓 관객들은 패션쇼 런웨이나 콘서트장처럼 시시각각 무대 형태가 변하는 플로어에서 함께 이동하고 춤추며 뮤지컬을 즐겼다. 공연 90분 내내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배우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코로나 봉쇄가 풀린 뒤, ‘세계 공연의 메카’ 뉴욕 브로드웨이도 변신 중이다. ①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이머시브(Immersive·몰입형) 공연’이 늘고 ②익숙한 히트곡들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며 ③누구나 한번은 꼭 보고 싶어하는 ‘킬러 IP(지식재산권)’ 작품들로 관객을 유혹한다. 이런 노력 덕에 코로나로 생존 위기에 몰렸던 브로드웨이는 2022~23시즌 매출과 관객 수 모두 전성기였던 18~19시즌의 8할 넘는 수준까지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그래픽>
◇①”관객이 완성” 이머시브 공연
뮤지컬 ‘히어 라이즈 러브’는 관객이 직접 공연의 일부가 돼 즐기는 ‘이머시브(Immersive·관객 몰입형) 공연’의 최신 사례. 99년 역사의 브로드웨이 극장은 이 공연만을 위해 내부를 완전히 뜯어고쳐 디스코 클럽처럼 변신했다. 뮤지컬의 주역은 굴곡진 필리핀 현대사의 주인공들이다. 이멜다 마르코스(1929~)를 중심으로, 그녀의 독재자 남편(1917~1989)과 훗날 민주화의 상징이 되는 니노이 아키노(1932~1983)의 사랑과 야심, 몰락과 죽음에 이르는 세월을 초고속으로 질주한다. 극장이 클럽처럼 변한 건 마르코스 부부가 좋아했던 뉴욕 최고급 나이트클럽 ‘스튜디오54′의 향락적 분위기를 본뜬 것. 마르코스 부부는 필리핀 대통령궁에 ‘스튜디오54′를 본딴 비슷한 시설을 만들었다는 기록과 영상이 남아 있다. 관객은 극의 흐름에 따라 젊은 이멜다가 우승했던 미인대회 청중이나 마르코스나 아키노가 필리핀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선거 유세장의 인파, 이멜다가 연 디스코 나이트클럽 손님이 된다. 모든 순간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진행되지만, 동시에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는 딱 그 국민의 강함 만큼만 강하다”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
‘슬립 노 모어’나 ‘그레이트 코멧’ 등 기존 이머시브 공연에 비해, 이 작품은 복잡한 생각 필요없이 클럽에 놀러온 듯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킹키부츠’ 등 히트작을 만든 ‘히어 라이즈 러브’의 프로듀서 할 러프틱은 “코로나로 집 안에 머무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내려면 극장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필요했다”며 “클럽처럼 즐기도록 만든 덕에 관객의 3분의 1 이상이 30대 이하 젊은이다. 극장 개조를 위해 1800석 규모 극장을 1100석 정도로 줄여야 했지만 결과에 만족한다”고 했다.
◇②”아는 노래네?” 주크박스 뮤지컬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이 ‘MJ’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도입부만 들어도 어깨가 들썩이는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코로나로 개막이 2년 넘게 미뤄져 2021년 12월 막을 올렸지만, 토니상 10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등 4부문에서 수상했다. 관객 87만명, 매출액 1억2760만달러를 넘는 등 흥행 성적도 빼어나다. 지난달 22일에는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들로 만든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Once Upon a One More Time)’이 개막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 동화 속 공주들이 왕자가 키스로 구원해주길 기다리는 대신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야기. 또 다른 히트작 ‘&줄리엣’ 역시 줄리엣이 로미오를 따라 죽는 대신 새 삶을 사는 내용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③'구관이 명관’ 꾸준한 스테디셀러
브로드웨이 관객의 한 축은 뉴욕 관광객. 이들이 평생 한 번은 꼭 보고 싶어하는 ‘킬러 IP(지식재산권)’ 작품들은 인기도 꾸준하다. 한때 초고가 암표가 나돌았던 뮤지컬 ‘해밀턴’은 4대째 주인공이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히 표 구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다. ‘라이언킹’ ‘위키드’ 등도 대표적 ‘구관이 명관’ 뮤지컬. 글로벌 히트작인 동명 소설·영화 원작의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조각배 위에서 호랑이와 바다를 표류한 소년 이야기를 마법같은 무대로 구현해 호평받았고, 올해 토니상 무대·조명·음향 디자인 3부문을 석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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