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 ‘마약 김밥’의 단상
나도 마약은 두렵지만, 이걸 法으로까지 만드는 게 과연 옳을까
상임위 통과하며 ‘권고’로 완화… ‘안락한 감옥사회’ 늘 경계를
‘마약 김밥’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게 2007년이다. 서울 한 재래시장에 있는 오래된 김밥 가게에서 파는 김밥을 젊은 고객들이 애정을 담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나는 그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재미있다고 웃었고, 다른 사람들 반응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마약에 빗대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흔한 일이다. 머리로는 그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입과 손으로는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뭔가에 중독된 상황을 떠올린다. 언어학자 댄 주래프스키에 따르면 사람들은 특히 값싼 스낵을 마약에 비유한다. 비싼 요리나 주류는 그보다는 섹스에 빗댄다.
2007년 기사에는 위의 점포에 간판이 없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몇 년 뒤 사진에는 가게에 간판이 있고, 거기에는 ‘마약’뿐 아니라 ‘원조’라는 단어도 함께 들어 있다. ‘마약 김밥’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면서 그 문구를 간판에 넣은 가게들이 그 사이 주변에 많이 생긴 거다. 2023년 현재 상호에 ‘마약’을 넣은 업소는 전국에 250여 곳이다. 메뉴 이름에 ‘마약’을 붙인 곳은 더 많을 텐데, 대부분 값싼 스낵을 파는 분식점일 듯하다.
그 16년 동안 마약 범죄도 크게 늘었다. 특히 10대와 20대 마약 사범이 증가세다. 그러면서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마약 핫도그’라는 표현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청소년들이 마약을 덜 경계하게 된다는 거다. 마약 김밥이라는 표현이 정말 그런 유혹을 던지고, 그 유혹의 힘이 그렇게 큰 걸까? 그렇다 해도 마약 하는 장면이 자세히 나오는 수많은 넷플릭스 드라마들보다는 위력이 덜할 텐데….
어떤 이들은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마약이라는 단어를 넣은 상호와 메뉴 이름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런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그런 주장에 얼마나 과학적인 근거가 있을까? 흔히들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매년 실시하는 국민 인식도 설문조사다. 지난해에는 응답자 78%가 ‘마약 김밥, 마약 커피 같은 표현이 마약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저해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마약의 폐해에 대한 인식과 퇴치 캠페인 실천 의향을 줄줄이 묻는 설문조사에서 달리 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보고서 원문을 찾아보면 관련 질문 9가지가 모두 그렇게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인상인데, 이 문항의 ‘정답률’이 가장 낮았다.
청소년들이 과연 마약 김밥 때문에 마약에 빠지는지는 설문조사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방법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 마약 사범들에게 어떤 이유로 마약에 호기심을 품었는지, 어떻게 마약을 접했는지 잘 물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 집중해서 대처해야 할 문제가 마약 김밥인지 다른 무엇인지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 마약 김밥 집이 많이 들어선 지역에서 마약 사범 초범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는지 살필 수도 있겠다.
“지금 한국 사회의 마약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냐? 청소년들이 마약을 해도 괜찮으냐?” 하고 비판하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 나도 마약 문제가 두렵다. 그런데 막연한 기대로 법을 만들어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발상 역시 두렵다. 그 성급하고 일차원적인 논리, 규제의 힘에 대한 끈질긴 과신, ‘안락한 감옥 사회’를 향한 기이한 열정을 모두 두려워한다(살인 장면은 그대로 내보내면서 흡연 장면은 뿌옇게 처리하던 한국 방송국들의 우스꽝스러운 관행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힘이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움직여 왔다고 생각한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상호와 메뉴에 쓰지 못하게 막는 법안들은 조금 수정되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고, 이제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칠 차례다. 법안은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마약’이 들어간 간판이나 메뉴판을 바꾸라고 권고할 수 있다는 수준으로 완화됐고, 식약처와 지자체가 교체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걸까. 법이 시행되면 그 예산은 세금에서 나오는데 정책 효과는 누구도 모른다. 애초에 마약 김밥과 마약 사범 증가의 관련성부터가 분명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마약 퇴치 캠페인과 재활 프로그램에 보탤 수도 있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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