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대만에서 만난 ‘슴슴한’ 친절의 맛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2023. 7.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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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동남아 여행을 꽤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외국인들만 다닌다는 관광지만을 쏙쏙 골라 다녔음에도 번역기 없이는 간단한 커피 주문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 날은 또 어찌나 푹푹 찌는지 고향이 대구인 나는 동남아 그 어디를 다녀도 더위는 내 나름대로 자신 있었지만, 대만에서는 처참히 무릎 꿇었다. 날씨도 무덥고 소통 때문에 난감했던 여행에도 남은 것은 있다. 바로 대만 사람들.

여행 전 찾아본 사람들의 여행 후기에서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도 나는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친절이 어디까지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에피소드를 하나 말해보자면, 우리가 대만의 유명 사원인 용산사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였다. 주변 사람들은 뭔가를 부지런히 기도하며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만 어찌할 줄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큰 향로 앞에 서서 멈춰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잠시, 옆에서 기도하던 아주머니가 손짓 발짓으로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손에 작은 부적 액세서리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그걸 향로 위로 빙빙 돌리는 시범을 보였다. 우리가 차고 있는 스마트 워치를 팔찌라 생각하고 그걸 풀어 본인을 따라 하라는 신호를 보내기에 우리가 “메이요(없어요)”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더니 이내 고민도 없이 손에 쥐고 있던 자기 부적을 우리에게 건네고 홀연히 안쪽 사원으로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는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기도 후 부적을 쥐고 같은 자리에서 그를 기다렸지만 애초에 돌려받을 생각은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당황스러울 정도의 친절은 예상 밖이라 잠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지난 며칠간의 여행을 다시 떠올렸다. 길이라도 하나 물을라치면 가게 안에 있다가도 길가로 나와 최선을 다해 길을 알려준다든가(심지어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야시장에서 자리를 착각해 엉뚱한 자리에 앉아있어도 화 한번 내지 않고 계속해서 다시 설명해 주던 점원의 다정한 얼굴, 몇 번이고 눈이 마주치면 인사해주던 사람들. 그들은 평생 다시 마주칠 일 없는 타국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온정을 베풀 수 있었을까. 고작 여행 한두 번 다녀온 것으로 그 나라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만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절대 모르는 체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쯤은 알 것 같았다.

나에게도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싶었던 과거가 있는데, 문득 내가 너무 덤덤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극적인 ‘사이다’ 맛에 길들여져 ‘슴슴한’ 친절의 맛을 잊고 살았다. 흉흉해진 세상을 탓하며(물론 경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부러 외면한 도움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맞는 말이다.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더 챙겨야 하는 것이 옳다. 다만 다른 특별한 요인 없이 가장 평온한 일상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렸을 때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시원하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은 아직도 헷갈리기는 한다. 관심과 간섭의 경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서비스직에 요구되는 친절 사이의 간극, 어디까지가 적당하고 어디까지가 오지랖 넓은 일일지.

나는 당분간 답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게 청해오는 수많은 도움의 신호를 기민하게 알아채는 사람이 되려 한다. 길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히 굴고 싶고, 돌아오는 따듯한 인사 한마디를 얻고 싶다. 먼저 말 걸어오는 이에게 무안 주지 않으며, 조금 더 타인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에는 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순간 내게도 닿기를 바란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듯이 또 살릴 수도 있기에, 언젠가 나를 살려줄 낯선 이들을 위해 서로를 구원하며, 뜨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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