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홍준표의 이상한 하방(下放)
홍준표가 대구로 ‘하방’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방(下放)’이란 중국 공산당이 고급 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그들을 공장이나 농촌으로 내려보내 현장학습을 하도록 한 것 아닌가? 지도자들이 인민 위에 군림하지 말고 노동을 함께하면서 인민의 삶을 체감하라는 정책이었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대구에 오겠다는 홍준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하방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그는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가르치려고 했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호통을 즐겼다. 대구의 기득권을 깨겠다고 기염을 토했으나 가장 강력한 기득권은 그 자신이었다. 그의 하방은 허세였다.
그의 참모습은 비교적 일찍 드러났다. 그는 어느 기자를 ‘못된 질문’을 한다고 지목했다. 지역 언론은 순간 얼어붙었다. ‘잘된 질문’과 ‘못된 질문’의 선별은 전적으로 고을 원님인 홍 시장의 몫이었다. ‘소멸해 가는’ 지역에서 주눅들어 있는 언론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능수능란했다. 그의 손에는 지역 언론을 지원하는 예산도 있었다. 다른 질문을 재촉하는 그의 치켜든 턱과 부릅뜬 눈이 ‘이상한 하방’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보수적이고 약한 시민사회, 일당 지배 정치사회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벽을 지역 언론은 넘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가련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기자들은 좌절과 분노를 술로 달랬다. 그들에게 기자정신을 가르쳤던 늙은 선생도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에게 정신 승리만을 촉구할 수는 없었다.
홍준표의 ‘이상한 하방’에 마음을 다친 이는 많았다. 그는 지역 경제인을 만나도 ‘가르치려고’ 했고 시민단체도 ‘가르치려고’ 했다. 그가 가르치려 하는 곳마다 불화는 전방위로 커졌다. 시민사회단체의 손을 봐주겠다는 것도 그 연장에서 나왔다. 민선 자치 시대를 수놓았던 ‘협치’라는 개념은 다른 나라말이 되었다. 시민사회단체의 색깔과 정체성을 문제 삼더니 연대 활동과 같은 사업 내용에도 시비를 걸었다. 시민사회단체를 다스리려고 보조금 지급이라는 칼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급기야 홍 시장은 시민사회단체 청구 정책토론 8건 가운데 7건을 거절했다. 정책토론 청구 서명 인원을 기존보다 다섯 배나 늘리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면서 서명부를 정밀 검사했다. 대구시의 입은 거칠었다. ‘떼법 근절’ ‘고의적 행정 방해’ ‘수사 의뢰’ ‘범죄 행각’ ‘시민의 이름으로 정치’ ‘시민 참여민주주의’ 등은 어느 틈엔가 범죄행위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대구에서 오래전부터 개최해온 퀴어축제가 올해도 열리게 되었는데 경찰은 퀴어축제 대열을 안전하게 보호했으나 홍 시장은 느닷없이 도로점용 허락은 행정기관이 관리하는 것이라며 집회를 가로막고 나섰다. 그래서 기이한 광경이 생겼다. 축제를 보호하는 경찰과 축제를 가로막는 행정기관이 충돌한 것이다. 대구시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으나 법제처는 이를 요건이 안 된다고 반려했다. 반려 사유를 설명하기 위한 법제처의 의견을 ‘유권해석’으로 둔갑시키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이상한 하방’은 과하지욕(袴下之辱) 소동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아니 절정에 이른 것이 아니라 바닥을 보였다. 홍 시장은 얼마 전 폭우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골프를 친 사실을 들켰다. 간단히 소명했으면 끝났을 일을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을 강변하면서 여론의 질타는 커졌고, 그가 속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징계를 시작했는데도 그는 한신의 고사 ‘과하지욕(袴下之辱)’을 인용하며 항의했다.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벌이 가시화하자 진짜로 그는 가랑이 밑을 기었다. 페이스북에서 ‘과하지욕’이라는 말을 지우고 경북 예천으로 수해 복구 활동을 갔다. 대구는 피해가 없었는데 무슨 문제냐. 재난 대응 매뉴얼을 어기지 않았다. 이런 궤변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홍 시장이 징계처벌이 다가오자 동정을 받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쑥덕공론을 한다. 홍 시장이야 야속할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홍 시장이 자초한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하방’은 애당초 허세였으며 그의 ‘이상한 하방’ 이후 도시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대구시민 전체의 이름으로 숙의 공론을 통해 결정한 신청사 계획을 뒤집고, 시민원탁회의와 주민참여예산제 등 보수도시 대구가 자부심으로 이루어놓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과를 홍 시장이 흔들고 있다. 수해 골프는 그 연장선에 있는, 따라서 그 책임이 결코 가볍잖은 사안이다.
김태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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