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콩물 국수철
복더위에 개처럼 혀를 빼고 숨을 헐떡이게 된다. 부순 얼음 가루가 뿌려진 콩물 국수가 먹고파. 끓는 속을 시베리아 냉동고로 만들어야지. 요 동네에선 무슨 국수든 설탕을 숟가락째 퍼서 담고 달달구리로 비벼서 먹는다들. 나는 당뇨병 걸릴까 벌벌 떨면서 소금에 설탕 쬐끔. 바야흐로 콩물 국수철이렷다.
소설가 황석영은 북한 김일성 주석과 수십차례 만나 식사를 나눴는데, 김 주석이 국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던가.
“보시라요 황 선생! 사람들은 두 끼만 국수를 먹어도 곧 질린다고 하지만 나는 한 열흘은 먹을 수 있을 거외다.”
한번은 콩물에 검은 국수 면발이 똬리를 튼 이북식 콩물 국수, 정확히는 ‘언 감자국수’를 대접하더란다. 엄동설한 언 감자를 땅에서 캔 화전민들은 감자를 강판에 갈아 체에 걸러 녹말을 내린 뒤 반죽, 국수 면을 뺀다. 이를 콩물에 풀어 먹는대. 여기엔 이북식 갓김치를 곁들여 먹어야 제맛이란다. 전라도식 갓김치는 젓갈이 맛을 내는 데 반해 이북식은 젓갈을 넣지 않고 쌉쌀하나 갓 향내가 곧바로 나는 게 특색.
만리장성이나 태화루 뭐 이런 이름의 중화요리 가게에서 보통 배달하는 콩물 국수는 노란 단무지를 반찬으로 챙겨준다. 그러나 조선 국수는 물김치나 갓김치를 얹어 후루룩 쩝쩝~했을 때에만 진한 감동과 흡족함이 뒤따르는 법.
식민시절 일본 음식이랑 뒤범벅이 되었는데 생선회, 돈가스, 닭꼬치, 고로케, 나가사키 카스테라, 경단, 찐빵, 단팥죽, 우무, 우동, 메밀국수, 튀김(뎀뿌라), 초밥, 장어덮밥 등이 길거리와 주방에 차려졌다. 간편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버거와 빵, 아이스크림과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가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다. 앞으로 얼마나 콩물 국수를 파는 가게가 남아 있을까. 특히 남북이 같이 먹는 음식은 한없이 애정해주어야 한다. 마지막 끈, 혈육의 끈이라 해야 하나.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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