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96] 맨해튼헨지
정북(正北)에서 시계 방향으로 29° 기울어진 맨해튼의 도시계획은 격자형이다. 그 때문에 길 가운데서 고개를 들지 않아도 정면에 하늘이 보이고, 고층 건물들 틈에서도 그리 답답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매년 5월과 7월 뉴욕에 ‘맨해튼 헨지(Manhattanhenge)’가 나타난다. 하지(夏至) 전후의 특정일에 맨해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과 석양의 해가 정확하게 일직선에 위치하며 발생하는 천문 현상이다. 불과 몇 분의 짧은 시간, 눈앞의 진한 오렌지색 태양이 길을 관통하고 바닥을 물들이며 양옆 고층건물에 반사되어 어우러진다. 이런 석양의 순간은 늘 있어왔지만 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언급했던 사람은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던 천체물리학자 닐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었다. 그는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세워진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따와 맨해튼 헨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다른 재미있는 ‘헨지’는 ‘MIT 헨지’다. 보스턴의 MIT 에는 ‘인피니티 복도(Infinity Corridor)’라 불리는, 여러 건물을 연결하는 251미터의 긴 복도가 있다. 양편에 각 전공 학과의 게시물이나 작품, 연구 결과들이 부착, 전시되어 학생들이 걸어 다니며 창의적 영감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도 매년 11월과 1월의 특정한 날 서쪽에 면한 창문에서 유입되는 석양이 복도의 축과 일직선을 이루면서 빛이 복도 끝까지 관통한다.
맨해튼 헨지를 촬영하기 위해서 퇴근길의 뉴요커들은 잘 보이는 위치를 찾아 기다린다. 교차로에서 보행 신호가 켜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도로 가운데로 튀어나와 순간 멈추며 한 방향을 향해 사진을 찍는 모습은 하나의 거리 행위 예술처럼 보인다. 한여름 날 저녁 맨해튼 한복판은 이 천문 축제를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하늘이 우리의 시간이자 GPS였던 시절, 인류는 스톤헨지의 힐스톤(Heelstone)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뜨는 해를 숭배했다. 뉴욕을 설계한 사람들이 이 현상을 염두에 두지는 못했겠지만, 수천 년 전 인류가 남겨 놓은 발자취와 영적 상징은 지금도 숭배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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