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말이 그림으로 나오니 해방이주”… 제주 할머니 8명의 지혜 담은 그림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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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난 것도 버리지 마라. 참외는 어떤 것은 상처도 나고 어떤 것은 곱게 자란다. 맛은 같다."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마을에 사는 조수용 할머니(93)가 지난해 6월 참외 그림을 그리며 지은 글이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그림이 되느냐"며 그리기를 주저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마당에서 자란 작물은 물론이고 신발과 자신의 속옷까지 꺼내 자유롭게 그리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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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할머니의 그림 수업’ 펴내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마을에 사는 조수용 할머니(93)가 지난해 6월 참외 그림을 그리며 지은 글이다. 그림 속 참외 표면엔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나 있다. 병상에 오래 누워 지냈던 남편을 최근 떠나보낸 조 씨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 못생기고 흠집 난 과일도 그에겐 그림이 된다.
“저는 할머니들에게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아요. 그리고 싶은 것들을 이미 마음속에 품고 계시니까요.”
그림 수업은 2021년 시작돼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최 씨는 낮엔 할머니들과 모여 그림을 그리고, 밤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림 옆에 쓸 글을 짓는 일대일 수업을 연다. 그는 “할머니들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달력 뒷면에 글자 연습을 한다. 글을 배우지 못해 다른 이들 앞에선 글쓰기를 머뭇거리는 할머니들을 위해 밤 수업을 열게 됐다”고 했다.
수업이 계속되자 할머니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그림이 되느냐”며 그리기를 주저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마당에서 자란 작물은 물론이고 신발과 자신의 속옷까지 꺼내 자유롭게 그리게 된 것. 최 씨가 지난해 6월 늦은 밤 강희선 씨(86) 댁에서 수업을 하던 때였다. 허리춤이 늘어난 낡은 팬티를 그리던 강 씨는 그림 오른편에 이렇게 써내려갔다. “세상 오래 살아보니 이런 것도 해보고 꿈에도 생각 안 했어. 그림 그리는 것.”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음속 말이 그림으로 나오니 이게 해방이주.”(강 씨)
최 씨는 “저는 늘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왔는데, 할머니들을 보며 삶의 태도를 다시 배웠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아세요. 그래서 오늘 그리고 싶은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죠.”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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