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 싸움닭 시절로… 나 돌아갈래!

진천=강동웅 기자 2023. 7.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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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게임 3연패 도전 태권도 이다빈
정상 지키려는 생각에 움직임 신중해져
국제대회 잇단 16강 탈락… 자신감도 뚝
“파이터 모습 찾자” 공격적 발차기 맹훈
여자 태권도 국가대표 이다빈(67kg 초과급)이 2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오른발 옆차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아시안게임 3연패에 도전하는 이다빈은 “내 키가 178cm로 체급 평균 대비 10cm가량 작다.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가려면 상대가 발차기를 한 번 할 때 나는 세 번을 해야 한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누구보다 상대를 많이 때리는 투지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진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오늘 물러서지 않고 공격적으로 발차기를 많이 해냈어.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싸움닭 같던 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여자 태권도 국가대표 이다빈(27·서울시청·67kg 초과급)은 20일 밤 훈련일지를 쓰면서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엄지척’ 사인을 보냈다.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에게 ‘목표달성표’가 있다면 이다빈에게는 훈련일지가 있다. 이다빈은 울산 효정고 재학 시절부터 김민호 당시 코치(57) 제안으로 매일 훈련일지를 쓰고 있다. 김 코치는 이다빈에게 국가대표라는 꿈을 처음 심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다빈이 2014년 고교생으로는 유일하게 국가대표로 뽑혀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 때도, 한국체대 재학 중 참가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도 훈련일지가 함께했다. 이제는 ‘직장인’이 된 이다빈이 9월 개막하는 항저우 대회에서도 우승하면 여자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3연패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남자부에서 이런 기록을 남긴 것도 ‘미스터 태권도’ 이대훈(31·은퇴) 한 명뿐이다.

문제는 몸도 마음도 한창때 같지 않다는 점이다.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단과 합동 훈련을 벌이던 2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이다빈은 “태권도 선수는 대개 25세 무렵 전성기가 온 이후 내림세를 걷는다. 어느새 대표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이가 된 데다 최근 대회 성적도 부진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고 털어놨다. 이다빈은 지난달 바쿠 세계선수권대회와 로마 그랑프리에서 연이어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다빈은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67kg 초과급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한국 국가대표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다. 이다빈은 이 대회 준결승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 비앙카 워크던(32·영국)을 상대로 0.1초를 남겨 놓고 역전에 성공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패한 뒤 금메달을 딴 밀리차 만디치(32·세르비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엄지척’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다빈은 “2, 3년 전만 해도 내 별명은 ‘파이터’였다. 상대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몰아쳤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과거에는 도전자의 입장이라 무서울 게 없었는데 이제는 정상에 여러 번 서다 보니 ‘이 자리를 꼭 지켜야 해’라는 생각에 움직임이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이다빈은 또 “도쿄 올림픽 준비 당시 나보다 네 살 많았던 대표팀 언니 오빠들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너도 고관절, 체력 보강 운동을 미리 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그때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며 웃었다.

“국가대표 선발전 때도 ‘동생들에게 체력적으로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다빈은 이전까지 손도 대지 않던 영양제를 하루에 여섯 알씩 챙겨 먹으면서 훈련일지를 통해 마음도 다스리고 있다. 이다빈은 “부족한 점이 90%고 잘한 점이 10%라도 잘했던 일을 일지의 맨 앞에 쓰고 있다. 나 자신을 칭찬해주면서 내가 나를 일으켜주기로 결심한 것”이라며 “내 칭찬을 쓸 때는 동시에 입으로도 소리 내 읽는다. 이렇게 하다 보니 긍정적인 생각들이 자라나고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던 황경선 코치(37) 역시 “자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행동으로 옮기라”고 격려하면서 이다빈의 부활을 돕고 있다. 황 코치는 베트남 대표 선수와 연습 경기를 치른 이다빈이 오른발 앞돌려차기와 왼손 주먹지르기 등을 앞세워 14-1 완승을 거두자 “그래, 이제 이다빈답네”라고 소리치며 기운을 북돋아줬다.

이다빈은 “원래 내 모습까지는 아직 20% 정도밖에 못 온 것 같다. 아시안게임 3연패라는 타이틀에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늘고 있다. 당장 눈앞의 아시안게임 목표만 보면서 달리다 보면 내년 파리 올림픽 정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진천=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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