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계셨네요 충무공의 묘소…임금님이 친히 비문도 지었네
- 노량해전 전사 후 16년 뒤에야
- 음봉면 어라산에 아내와 합장
- 무덤 길목엔 ‘어제신도비’ 우뚝
- 9㎞ 거리 현충사엔 알찬 기념관
- 통영·여수 아닌 추모공간 새로워
이 여행은 애초 기사로 쓰려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이순신 전문가이며 ‘전도사’인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께서 온 힘을 다해 국제신문에 매주 연재하는 ‘의역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담당자로서 더 많은 사진 자료를 구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당연하게도, 충남 아산 현충사부터 떠올렸다. 아산 현충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삶과 마음을 담은 유물과 복제품을 꽤 많이 촬영해 올 수 있을 터였다. 지난 7일 빗속을 뚫고 아산으로 향했다.
동행한 일행은 “아산 현충사에 딱 한 번 다녀왔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가 덧붙였다. “20년쯤 된 것 같다.” 세종대왕과 함께 이순신 장군은 한민족 개개인의 가슴에 박혀 있는 불멸의 위인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스미고 넋이 서린 아산 현충사에 자주 다녀왔다는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번에 부산에서 아산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 보니 실마리가 조금은 풀렸다. 충남 아산은 부산에서 출발한 여행자가 자주 다니는 주된 경로에서 절묘하게 비켜나 있다. 서울·광주·전주·목포가 부산에서 멀다 해도 왠지 일단 출발하면 ‘한 방에’ 도착할 것 같은 익숙함과 단순함이 있는데, 아산은 그렇지는 않았다. 아산 주민분들께는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정확한 위치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싸운 바다다. 부산을 기점으로 통영을 거쳐 여수까지만 거점으로 잡는다 해도 이순신 장군의 유적과 이야기는 숱하게 만날 수 있다. 부산울산경남 사람들의 이순신 역사기행은 남해안 지역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아산에 가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묘는 어디에?
아산 현충사에 들어서서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정려·충무공 고택·충무공 셋째 아들 이면의 무덤·활터 등 잘 가꿔놓은 여러 장소를 경건하게 걷고 보고 하다가 무심코 공간 안내 리플릿을 집어 들었다. 제목이 ‘아산 충무공 유허(현충사)와 이충무공묘’라고 돼 있다. 리플릿을 보니 현충사를 포함해 이 일대는 ‘아산 충무공 유허(遺墟)’로 통칭하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9㎞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이충무공묘’가 있다고 안내돼 있다. 뭔가 번쩍 불꽃이 튀었다. 이충무공묘라고?
문득 돌이켜보니, 이순신 장군의 묘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동행한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에도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이 타계하면 국립현충원에 안장한다. 돌아가신 뒤 어디에 모시는지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란 뜻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널리, 깊이 존경과 사랑을 받는 큰 인물의 묘에 관해 그간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색하고도 아프게 다가왔다. 곧장 이충무공묘로 향했다.
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왜 이순신 장군께서 어디에 묻히셨는지 관심을 못 가졌을까? 통영의 충렬사와 착량묘, 남해의 충렬사(노량)와 이락사, 여수의 충민사 등은 이순신 장군을 모시고 기리는 공간이다. 남해안 일대에 이처럼 충무공을 추모하는 곳이 적지 않다 보니 미처 무덤에는 관심이 덜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충무공묘는 매우 잘 단장돼 있었다. 넓고 아늑하고 깨끗했다. 주차장과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도 잘 갖췄다. 과연! 세종대왕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인의 묘소가 허름할 리 없지. 마음이 놓였다. 이충무공묘는 시간을 내어 찾아갈 이유가 여러 면에서 충분한 곳이었다. 아산 현충사와 한데 엮어 역사기행을 다녀올 경로로 잡는다면 뜻깊을 것이다. 이번 여행을 기사로 써서 독자들과 나눠야겠다고 이때 마음 먹었다.
▮어제신도비의 품격
이충무공묘 현장에서 안내표지 등을 통해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음력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바다 위에 뜬 전함에서 돌아가셨다. 그때 장군의 유해를 바다에서 처음으로 옮긴 뭍이 남해군의 이락사로 알려졌다. 충무공의 유해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고금도를 거쳐 아산 금성산으로 모셔졌고, 이후 순국하신 지 16년 뒤가 되는 1614년 지금 자리인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에 아내 상주 방씨와 합장됐다.
이충무공묘를 지키는 신도비(神道碑)는 꼭 봐두어야 할 중요한 유물이다. 현충사관리소가 제공한 자료는 신도비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높은 벼슬아치가 죽었을 때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그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을 담은 비석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나 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죽었을 때만 세울 수 있었다.” 이충무공묘 앞에는 ‘이충무공어제신도비’ ‘이충무공신도비’ ‘이봉상신도비’가 우뚝 서 있다.
아무래도 ‘임금이 직접 세웠다’는 뜻의 어제(御製) 신도비에 눈길이 먼저 갔다. 안내문을 읽어 본다. “…정조가 이순신에게 최고직인 영의정을 증직한 후 친히 비명을 지어 정조 18년(1794) 10월 4일에 세웠다. 정조는 이순신을 추모하는 정이 깊었던 군주로 이 비문에서도 ‘우리 장하신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를 세우심에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 한 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함이라.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히 비명을 짓지 아니하고 누구 비명을 쓴다 하랴.…”
어제신도비의 글씨는 중국 당나라의 충신이자 서예가 안진경의 것을 집자해서 썼다. 높은 품격이 서린 비다. 어제신도비 앞에는 1979년 세운 ‘정조대왕어제신도비’ 설명문 비석이 있다. 큰 학자 임창순 선생이 내용을 지었다.
▮아산 현충사에서 힘을 충전하고
오랜만에 들른 아산 현충사 여행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주 오랜만에 간 사람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아산 현충사는 잘 관리되고 있다. 경건하면서도 아늑하고 고즈넉하고 사람을 품어주는 기운이 은은하게 스며 있다.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안으로 가면 장군님의 장검(복제품) 등 다양한 상설전시를 볼 수 있다. 기획전시와 영상 관람도 빼먹지 말자. 현재 기획전시는 ‘국민이 지킨 이충무공-현충사 창건 90주년 특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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