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K장녀의 ‘독박 돌봄기’
올해 초 독립선언을 했다. 정확히는 더 이상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머니를 부양한 지난 9년 동안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뻔히 아는 동생들은 군말이 없었다. 나의 대안은 4남매가 더 확실히 돌봄을 분담하고 책임지는 것이었다. 돌아가면서 한 달씩 어머니 모시고 살기. 그리고 병원케어는 신경외과, 정신과, 심장내과, 척추센터 등으로 나누어 담당하기. 이것에도 동생들은 이견이 없었다.
작년 초에도 나는 “돌봄을 하는 자도 돌봄이 필요하다”며 한 달에 일주일은 돌봄 휴무를 갖겠다고 말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 나가자빠질까 봐 걱정하던 동생들은 동의했고, 한 달에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어머니 식사를 책임지고, 병원을 모시고 가고, 복지사·요양보호사 등 다른 돌봄 관련자들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어머니 말벗을 해드리기로 했다.
첫 휴무는 달콤했다. 식사는 두 끼만 간단히 먹었고, 친구가 빌려준 작은 시골집에서 어떤 방해도 없이 책을 내처 읽었다. 그러다 졸리면 산책하거나 낮잠 자거나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영화를 봤다.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어 생산성도 높았다. 온라인으로 진행한 세미나, 강의 이외의 시간엔 완벽한 침묵을 즐겼다. 평화였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생들한테는 출장, 수술 등 계속 일이 생겼고, 병원케어가 서툴러 어머니 불만이 쌓여갔다. 나는 휴무 기간을 점점 줄였고, 병원은 다시 내가 모시고 다녔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딘가를 예약해서 가는 일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일상을 유지하면서 돌봄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독립밖에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어머니가 다시 나빠졌다. 1월엔 정신과 약을 바꾸면서 종일 처짐, 식욕 부진 등의 부작용이 생겨 한동안 고생했는데 5월 초엔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특별히 넘어지거나 부딪힌 적이 없어 처음에는 담이 들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혹시 갈비뼈가 부러졌나? X레이, 심지어 MRI까지 찍었지만, 골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심장 문제? 심장초음파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 패치를 붙이고도 아파 죽겠다며 하루 종일 엉엉 우셨고, 곡기도 거의 끊으셨다. ‘노인 금쪽이’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최초로 가슴 통증을 호소한 날은 남동생 내외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장기 유럽 여행을 떠나던 날이었다. 연이어 나도 돌봄 휴무를 썼다. 그러니까 어머니 흉통의 원인이 주 보호자 딸과 외아들이 동시에 자신의 곁에서 사라진 듯한 모종의 불안과 긴장, 즉 심리적인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노인 우울증 증세는 육체적으로 더 많이 발현된다는 사실도 뒤늦게 떠올랐다. 나는 집에 더 오래 머물렀고, 어머니와 수시로 눈을 맞췄고, 아프다고 하면 과하게 위로했다. 70 먹어서 색동옷 입고 부모 앞에서 재롱을 피웠다는 춘추시대 노래자(老萊子)처럼, 한동안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어머니 흉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내 독립도 영원히 물 건너갔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와 내 친구들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도 키우느라 뼛골이 빠졌었다. 하지만 덕분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담론을 만들고, 공동 육아 등의 실험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닥친 부모 돌봄 앞에서 우리 대부분은 속수무책이고 각자도생 중이다. 이런 초고령화 시대를 예측할 수도 없었고, 나이듦 따위를 생각하거나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책임감과 인내심이 강한 K장녀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 치더라도 돌봄과 관련하여 평생 독박을 쓰고 있다는 불쾌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며칠 전 받은 부고 속 고인의 연세는 96세였다. 얼마 전 돌아가신 후배 아버지는 99세였다. 80대 중반인 나의 어머니도 지금 컨디션이라면 족히 10년은 훨씬 넘게 사실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한편, 내가 70이 넘어서까지 어머니를 돌보면서 이 집 방 한 칸에서 늙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 동시에 이런 마음을 들켜버릴까 더욱 두렵다. 내가 겪은 지난 9년간의 부모 돌봄은 스릴러나 호러에 가까웠는데 나에게는 이것을 명랑 홈드라마로 바꿀 비책이 없다. 요즘 어머니는 다시 말갛게 웃으신다.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면서 매일매일 돌봄 ‘존버’ 중이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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