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지하, 해결할 의지는 있는가
섬뜩한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2022년 서울의 반지하 주택에서 사람들이 죽은 참사. 참사 직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도 끔찍했다. 대통령이 참사 현장을 다녀간 사진은 홍보 용도로 쓰였다. 국토교통부는 역대 최대 규모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참사 재발을 방지하고, 반지하를 비롯한 비적정 거처를 해소하겠다고 공약한 중앙정부가 중점을 두었어야 할 정책이다.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중앙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공급 비율을 15%에서 30%로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비율이 늘어난 것은 착시다. 비율을 구성하는 분모인 총공급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하고 시행한다는 보증금 무이자 지원 정책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주하는 가구에 최대 5000만원의 보증금을 무이자로 융자하겠다는 정책인데, 이미 취약계층이 1~2%대 이율로 1억3000만원까지 융자하는 전세임대주택이라는 제도가 있다. 적지 않은 가구가 전세임대주택 지원을 받아도 구할 수 있는 집이 없어 반지하에 들어간다.
서울시 대책도 중앙정부보다 나을 것은 없다. 지난 1년여 과정은 반지하 거처를 멸실하겠다던 오세훈 시장의 발언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참사 후 장마철이 돌아올 때까지 침수방지시설 설치만 마무리한 수준이다. 당초 반지하 거주 가구 일부에 대한 조사계획만 수립했다가, 모든 반지하 거처에 대한 조사를 마친 성동구에 떠밀려 부랴부랴 전수조사에 나섰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수요조사는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애초 서울에서 가장 유효한 수단인 매입임대주택은 공급할 의지도 없었다. 그동안 SH 사장은 매입임대주택 정책을 비난하는 데만 급급했다. 심지어 참사를 겪고도 매입임대주택 공급에 제동을 걸었다. 반지하 거처를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반지하 주택 매입만을 강조했다. 지상층의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해 반지하 거처 거주 가구가 이주할 공간을 마련하는 정책은 등한시한다.
서울시가 반지하에서 지상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주하는 가구에 최대 2년간 월 20만원을 지원하기로 한 특정바우처 정책도 진전이 없다. 올해에만 1만가구를 지원하는 것이 서울시 목표였는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까지 누적 지급건수가 800여건에 그친다. 제도를 이용한 가구 수는 그보다 적다.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명백하다. 지원금액은 취약계층이 반지하 거처를 포기하고 이주를 결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한국도시연구소가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서울에서 지상과 반지하의 평균 전세보증금 차이는 약 1억5000만원이다. 중앙정부의 보증금 무이자 지원정책과 결합한다 해도 메울 수 없는 격차다. 소득·자산이 낮은 계층은 특정바우처를 신청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특정바우처를 지원받은 대상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공통적으로 반지하 거처 밀집 지역을 포함한 정비사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멸실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정비사업 제도가 보완되지 않는 한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이들은 이주정착금이나 주거이전비를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다. 철거민들이 겪은 아픈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
모든 선주민이 재정착할 권리를 보장하는 이주대책을 수립하도록 규제하는 제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반지하를 포함한 비적정 거처 거주 가구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공공임대주택 공급계획을 수립하고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비준한 유엔 사회권규약에 따라 가용한 최대 자원을 마련해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실현해야 한다. 주거권은 헌법과 ‘주거기본법’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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