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이 뒤에 사람 있어요”

김다솔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2023. 7. 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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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블래스트(Vlast)라는 캐릭터 회사의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PLAVE)’의 팬이 되어 소위 말해 ‘덕질’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증강현실 열풍 속에서 비대면의 상시화, 메타버스, 부캐, 케이팝 등의 요소들이 결합하면서 버추얼 유튜버와 아이돌처럼 새로운 형태의 직업들이 온라인 곳곳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플레이브 역시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고 각각의 설정을 가미한 다섯 명의 남성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이 온전히 허구로 구성된 가상 캐릭터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은 실시간으로 모션을 추적해서 반영하는 기술력 뒤에 사람이 직접 행동하고 있다는 점일 테다.

이와 관련하여 내게 깨달음을 주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한동안 플레이브의 활동을 주시하다 보니 유독 팬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한 문장이 있었다. 바로 “이 뒤에 사람 있어요”다. 아무래도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체가 살아 움직이면서 공중파 음악 방송에 등장하고 활동하는 게 낯선 일인지라, 거부감을 극심하게 표현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불편한 감정과 날 선 비난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팬들은 화려한 캐릭터와 정교한 기술력 뒤에 ‘사람이 있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평론가로서 소설을 읽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글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저자의 마음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을 의도로, 연민을 허위로 읽으면서 진심을 곡해할 위험이 뒤따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글이든 활자 뒤에 사람이, 그의 진심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종종 상식에 반하거나, 겪어온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런 문제의 배후에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이. 그러니 판단 이전에 앞서 언급한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이 뒤에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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