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깊은 호흡] ‘순한 맛’ 출판계
얼마 전,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씨의 트위터 글을 읽고 절로 미소 지은 적이 있다. 한 독자가 “유미리의 책을 읽고 있으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봐서 몰래 숨어서 읽게 된다”고 하자 작가는 “앞으로도 몰래 숨어서 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을 써나가고 싶습니다”라고 응대를 했는데 그것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최근 몇년간 국내 출판계, 특히 문학서 영역은 ‘순한 맛’ 책들 위주로 쏟아져 나오는 인상을 받아서이다. 실제 내용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대외적 홍보문구는 자주 ‘힐링’으로 수렴된다. 오죽하면 책 띠지의 문구에서 ‘공감’ ‘위로’ ‘연대’라는 단어들을 이제 좀 그만 보고 싶다는 농담도 나올까.
물론 혹자는 세상살이의 고단함, 먹고사는 일의 척박함, 현대인의 고독을 논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선한 영향력’의 필요성을 바랄 수 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책 속 세계만이라도 아무도 상처를 주거나 받는 사람 없이 서로에게 다정하고 우리네 삶이 안온하기를 바라는 마음. 한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문학의 주요 역할이 독자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것처럼 되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작가에겐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해주고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역할을 기대해서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책에 대한 얘기보다 ‘자기 삶의 고민’을 묻는 일도 잦아졌다.
거참, 삐딱하네. 순하고 따뜻한 게 뭐가 문제냐고 여길 수도 있다. 그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지배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문학서가 윤리나 도덕 측면에서 ‘좋은 사람’이나 ‘모범적’이 되는 것에 대한 강박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면 우선 재미있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소하고 안전하고 무해한 이야기들은 그 누구도 거스르거나 상처주지 않는다. 하지만 딱 그만큼 독자들의 내면을 요동치게 만들거나 뒤흔들 만큼의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도 못한다. 또한 윤리와 도덕,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이 일정하게 고착이 되어버리면 암암리에 주변 환경이 이에 부합해주기를 강요하는 숨 막히는 공기가 둥둥 떠다니게 된다.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터질 것 같으니, 위축된 창작자는 표현의 자유를 확장할 시도를 하기보다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좋아요’를 받기를 선택한다.
작금의 독서문화가 개방적이 된 것도 얼마간 영향이 있을까? 이제 책은 다른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꾸려서 함께 읽거나, 읽은 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사진을 올려서 주변에 드러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그러니 특히 더 ‘남들이 봐도 창피하지 않을, 욕먹지 않을 만한 책’을 내세워야 할 것만 같다.
근래 들어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와 창작에 도전하는 것을 본다. 그와 더불어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굴뚝같지만 잘 써지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이 글로 풀어지지 않는 것은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심리적 억압의 문제가 아닐까?
글과 책을 통해 나는 ‘좋은 사람’임을 보여주고 증명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어진다.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할 자신의 ‘야성’을 드러내기 두려워서 ‘이성’으로 통제하는 것인데 오히려 그 ‘야성’이야말로 논의와 생각을 불러일으킬 ‘지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고 있다.
새롭고 창의적인 것은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좋은 사람으로 봐주길 기대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오는 것 같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팽팽하게 늘려가는 글들을 더 보고 싶다. 재미는 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존재했으니까. 남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것을 일부러 쓰는 반모범생 기질의 작가들을 더 보고 싶다. 안온한 독서도 좋겠지만 도발적이고 휘몰아치는,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책들을 더 만나고 싶다. 정말이지, 몰래 숨어서라도 읽고 싶은 책은 대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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