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누가 2년차 교사를 극단으로 몰았나

박희준 2023. 7. 27. 01: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 1학년, 아이와 부모 예민한 시기
저연차보다 베테랑이 담임에 적격
음습한 교실 “무섭다”고 호소했으나
학교시스템, 자녀 과보호 탓 아닐까

23살 꽃다운 나이의 젊은 교사가 스스로 삶을 끝냈다. 그는 1학년 담임반 교실 한쪽에 붙은 음습한 창고에서 싸늘하게 발견됐다. 과밀학교라서 특별실을 개조해 만든 교실이다. 저출생 속 학령인구를 걱정하는 판에 과밀학교라니. 인기 학군인 서울 강남 한복판 학교임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 교실은 창문이 없어 해가 잘 들지 않았다. 평소 고인은 교실이 무섭고 우울하다며 창문을 뚫거나 교실을 바꿔달라고 했다고 한다. 젊은 교사의 무서움과 외로움은 과연 오롯이 창문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일까.

유서를 남기지 않아 정확한 배경을 알기는 힘들다. 다만 사건 발생 이틀 만에 학교 측이 두 차례 낸 문건은 상황을 유추할 실마리를 준다. 학교 측은 애초 전교생 대상의 통신문을 통해 담임 학년은 본인이 희망했고 그가 학폭이 아닌 나이스 관리 업무를 맡았으며, 담임 교체나 학폭신고·지원청 방문 사실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학급에서 발생했다는 사안은 바로 다음날 마무리됐고 정치인 가족은 없다는 점도 명시됐다. 학부모들 반발로 통신문을 수정해서 낸 입장문에서는 학급 담임 교체 사실이 없었음을 맨 앞에 내세웠다. 학급에서 발생했다는 사안에 대한 언급은 아예 사라졌다. 본인 희망대로 1학년 담임을 맡았고 학생 간 불미스러운 일이나 학부모 갑질은 없었음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자녀를 학교에 보내 본 학부모라면 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아이에게도, 학부모한테도. 아이는 인생을 통틀어 무한경쟁의 첫 대열에 합류한다. 일찌감치 어린이집 때부터 경쟁하려는 유별난 부모가 있기는 하다. 그래도 학생 능력이 숫자로 표시되는 건 초등 1학년 때부터다. 등수를 내지는 않더라도 과목별 점수로 아이 학습수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도, 마음 졸이며 ‘금쪽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도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등 1학년 담임교사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1학년 담임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아이에서 알파벳에 영어 단어, 구구단까지 줄줄 외우는 아이까지 학습 수준은 제각각이다. 1학년 담임은 아이만큼이나 예민한 학부모들 치맛바람에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새내기 학생과 초보 학부모를 노련한 베테랑 교사가 다뤄야 하는 이유다.

반면 고학년은 중장년 교사보다 저연차가 맡는 게 낫다. 5·6학년쯤 되면 학원 선행학습으로 학생 수준이 중등과정에 들어가 있다. 20∼30년 전 교대에서 배운 교사보다 10여년 전 똑같은 과정을 겪은 저연차 교사가 훨씬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빠르다. 고학년 학생은 젊은 교사의 정서적 공감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데도 임용 2년 차 교사가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니, 지난해 임용되자마자 그랬다. 해당 학교 일반교사 50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험칙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자녀가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부모들은 ‘도장깨기’처럼 하나씩 얻어간다. ‘내 아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똑똑한 애들이 많네’, ‘특목중·고나 자사고, 엄두 내기 어렵겠는데’, ‘‘인서울’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수도권 대학에나 갈 수 있었으면’, ‘대학이 뭐 중요해. 몸 건강하고 정신 똑바로 크기만 하면 되지’…. 초등 1년생을 둔 초보 학부모에게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러니 아이가 학교에서 조그마한 일이라도 당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수밖에. 한 자녀가 대세인 요즘, 교육열 높은 강남이라면 오죽할까.

교사는 숨지기 2주일 전쯤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업무폭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 난리’는 학교 측이 입장문에서 삭제한 ‘사안’으로 보인다. 이 사안으로 학부모한테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을 게 분명하다. 그를 무섭고 우울하게 만든 건 저연차 교사에게 1학년 담임을 맡기는 학교 시스템과 자녀를 과보호하는 사회 풍조가 아니었을까.

박희준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