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골키퍼 무리뉴

2023. 7.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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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조제 무리뉴 감독이 골키퍼 장갑을 꼈다. 누구를 위해서? 기자들을 위해서!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쉽게 상상이 안 된다. 세계 축구 역사상 '기자 독설 부문' 1위 후보 아닌가.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지만, 대표적으로 몇 장면만 소개하자면.

사생활을 묻는 중국 기자에게 "중국축구가 왜 쓰레기인지 알겠다"고 독설. 또 "내가 통역관에서 첼시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3류 기자에 멈춰있다"고 독설. 또 "기자 너희가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일보다 훨씬 쉽다. 그래서 내가 너희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고 독설.

대단한 독설이다. 현존하는 독설가 1위다운 위용이다. 그렇지만 설마 모든 기자에게 이러겠는가. 무례한 기자, 황당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만 이렇게 대응을 한 것이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 포착됐다.

그래서 오늘은 '기자 프렌들리'한 무리뉴 감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장면은 영국 언론 '미러'의 존 크로스 기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소개한 내용이다.

때는 2007년 여름, 첼시 감독 시절이었다. 일명 '첼시 기자단 축구대회'가 열린 것이다. 기자단 축구대회란 감독, 코칭스태프, 직원, 선수 몇몇이 나와 담당 기자들과 축구 대결을 펼치는 빅매치다.

대부분이 선수 출신인 구단 사람들, 기자들이 이길 수 있겠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의 발도 못 건드린다. 기자들이 축구 못한다고 선수와 감독을 쉽게 비판하면 안 되는 이유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신기한 대회.

이런 기자단 축구대회는 한국에도 있다. 나 역시 출전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상대가 엄청나게 봐줬는데도 매번 경기에서 진 기억이 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


무리뉴 감독은 첼시 팀 '골키퍼'로 나섰다. 선수 시절 미드필더였고, 스스로 3류 선수였다고 평가한 무리뉴 감독. 골키퍼 실력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무리뉴 감독은 선전했다. 그런데 첼시 담당 기자들이 더 선전했다. 아니 기적을 연출했다. 과거 국가대표 출신들이 즐비한 첼시 구단 대표들. 이들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둔 것이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상대 골키퍼는 무리뉴였다. 이 경기의 주인공이 무리뉴로 결정되는 순간이다. 승부차기는 흥미진진했다. 모두의 시선은 골키퍼 무리뉴에게 맞춰졌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관중들의 클래스도 대단하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이들은 존 테리, 애슐리 콜, 그리고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등이었다고 한다. 페트르 체흐가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벌써 16년 전 오래된 기억. 크로스 기자는 누가 골을 넣고, 몇 대 몇으로 경기가 끝났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나는 건 첼시 팀이 이겼다는 것. 그리고 골키퍼 무리뉴가 승리 확정 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햄스트링을 만지면서 간신히 경기장을 걸어 나갔다는 것.

역시 스페셜하다. 기자단 축구대회를 자신의 경기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액션이 좋은 무리뉴라니.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었다니. 기자들을 상대로 재미와 편안함을 선사하려고 한 무리뉴 감독의 노력이 느껴진다.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무리뉴 감독의 모습이다. 하긴 그때는 무리뉴 감독도 40대의 젊은 감독이었으니까.


크로스 기자는 이렇게 떠올렸다.

"그 여름, 우리는 몇 번이나 웃었다. 정말 여유로웠고, 재미있었던 경기였다. 스페셜 원과 맞붙어 설렜고, 무리뉴 감독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결과를 떠나 축구를 공유했다. 기자 커리어에서 그날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였다. 요즘 축구는, 축구팀들은 너무나 상업적이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조제 무리뉴 감독.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미러]-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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