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철 지나도 업데이트 안 되는 野‘기승전, 돈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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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1, 2당이 이념 양극단을 달리는 한국에 살다 보면 미국 정치에 좌우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된다.
작년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학자금 대출 탕감' 카드를 꺼냈을 때 "맞아, 미국에선 민주당이 좌파였지"라는 느낌이 확 와닿았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이다.
코로나19 전 미국 민주당 급진파가 강력히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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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현실 변해도 ‘흘러간 노래’ 되풀이
작년 중간 선거를 석 달 앞두고 나온 이 정책의 별명은 ‘역사상 가장 비싼 행정명령’. 미국의 보통 중산층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정부에서 대출받고 졸업 후 취직해 오래 갚는다. 바이든은 4300만 명이 진 학자금 빚 4300억 달러(약 550조 원)를 가구당 2만 달러까지 없애주는 정책을 의회 동의 없이 밀어붙였다. 국민의 빚을 정부 부채로 바꾸는 정책이다.
미국의 예산권은 의회에 있다. 대통령 멋대로 큰돈을 풀겠다는데 ‘전례 없는 포퓰리즘’ ‘명백한 매표 행위’란 비판이 나오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법정까지 갔다. 올해 6월 말 미 연방대법원은 ‘의회 승인 없는 추진은 잘못’이라며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내상을 입은 바이든은 20∼25년간 대출금을 성실히 갚고도 빚이 남은 이들의 잔액을 없애주는 낡은 조항을 찾아내 체면치레를 하려고 한다.
한국의 민주당도 올해 5월 비슷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청년이 소득이 없으면 이자를 면제해주는 법이다. 10년간 8650억 원의 예산이 든다.
문제는 월 소득 1000만 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 자녀에게까지 이자를 없애주는 경우가 생기고, 대학에 안 간 약 30% 청년은 역차별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다음 달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미국은 원금까지…”라며 강행 처리를 주문했던 이 대표 발언의 전제는 사실과 달라졌다. 그래도 민주당은 조만간 본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시킨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
“국민이 국가 대신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말은 요즘 35조 원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이 대표의 입버릇이다. 나랏빚을 늘려 민간의 빚을 덜어주자는 거다. 2021년 7월에도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나눠 주자고 주장하다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반대하자 “국가가 빚지지 않으면 국민이 빚져야 한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현대화폐이론(MMT)을 주장하는 국내 학자의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는 책 제목을 연상시킨다. MMT는 ‘독자 통화를 가진 나라의 정부는 무한정 돈을 찍어내도 문제가 없다’는 비주류 경제이론이다. 코로나19 전 미국 민주당 급진파가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푼 막대한 재정이 인플레이션 역풍으로 돌아오자 경제 논쟁의 판에서 종적을 감췄다. 글로벌 경제 상황은 이렇게 뒤집혔는데 이 대표의 레퍼토리는 그대로다.
이 대표는 재작년 7월 문재인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인하하기 직전에 “최고금리 적정 수준은 11.3∼15% 정도”라며 더 낮추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후 기준금리는 오르기 시작했다. 20% 금리 상한에 막힌 제도권 대부업체들은 신용 낮은 이들의 대출을 중단했다. 돈이 급해도 갈 곳 없는 서민 다수는 불법 사채업 고리 대출의 제물로 내몰리고 있다.
경제 환경이 바뀌고, 과거에 폈던 주장의 결과가 의도와 정반대로 나타나면 정책을 고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의 요즘 경제정책에선 학습 능력도, 반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흘러간 ‘기-승-전-빚 내 돈 풀기’ 노래를 되풀이할 뿐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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