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식 경례' '책상에 나치 문양'… 독일 시골 고교서 무슨 일이
"고교서 극우 성명, 성소수자 혐오, 성차별 일상"
지역 언론에 문제제기한 교사 2명, 테러 탓 최근 사임
나치식 경례로 인사하기, 책상에 스와스티카(나치의 상징인 꺾인 십자 문양) 새기기, 복도에서 인종차별적 가사 노래 틀기.
최근 독일 내 과거 동독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이 학교에서는 교사 2명이 '극우와의 싸움'을 공론화했다가 학부모·학생 반발에 밀려 사임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 교사들은 "극단주의적 성명·행동·구호와 성소수자 혐오, 성차별이 일상이었다"고 학교 분위기를 평가했다. 동독 지역의 우경화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학내 극우와 싸우는 구성원들, 안전에 위협 느껴"
25일(현지시간) AP통신은 독일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주(州) 부르크(Burg) 지역의 고등학교 미나 비트코이크(Mina Witkojc)의 전직 교사 2명의 인터뷰를 인용해 이 학교 청소년들의 우경화 실태를 전했다.
이곳에서 4년간 영어·역사를 가르친 라우라 니켈(34)과 3년 차 수학·지리 교사 막스 테스케(31)는 수년째 학내 우경화를 막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나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강의하거나 흑인 래퍼를 수업에 초대해 '상호 존중'에 대해 설명하는 등 극단적인 민족·인종주의가 끼칠 폐해를 가르치는 데 공을 들인 것이다. 또 이민자 동급생을 구타하겠다고 위협하는 학생들과 직접 상담하며 개별적인 설득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학내 극우 문화는 없어지지 않았고, 두 교사는 이 문제를 지역사회가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근 지역 언론에 학교의 위협적인 분위기를 설명하는 공개 기고문을 쓴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기고문에서 "극우 학생·교사들과 공개적으로 싸우는 학내 구성원들은 (그들의 위협적 태도 때문에) 스스로의 안전을 걱정한다"며 "(지역사회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식하고 싸워 나가야 한다"고 썼다. 이어 "학교는 두려움이 없고 열린 마음과 안전이 가득한 곳이어야 하며, 민주주의의 적들에게 집을 제공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사냥해 버리고 싶다" "베를린으로 꺼져라" 익명 메시지
이들은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익명의 학부모들은 학교에 니켈과 테스케를 해고하라고 요청했다. 두 교사의 사진에 "베를린으로 꺼져라"라고 적은 스티커가 학교 근처 가로등에 부착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두 교사를 "사냥해 버리고 싶다"는 익명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테스케는 최근 식료품 마트에서 한 남자가 뒤에서 다가와 귀에 "여기서 꺼져"라고 속삭였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그럼에도 학교와 지역 당국 역시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으며 니켈과 테스케는 2주 전 사직서를 내고 이 지역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브란덴부르크주 코트버스(Cottbus) 지부장은 자신의 SNS에 테스케를 가리켜 "급진적 좌파 정보원과 그의 공범이 사라졌다"며 비꼬는 글을 올렸다.
지난주에야 브란덴부르크주 교육 당국은 SNS에 "사냥" 익명 게시글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10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주 정부와 학교가 이 사건에 대한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과거 동독 지역, 예상보다 우경화 심각"
전문가들은 과거 동독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경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악질적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AfD는 독일 내에서 약 20%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브란덴부르크주·작센주·튀링겐주 등 과거 동독 지역에서는 내년 선거에서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실제 지난달 튀링겐주 조네베르크시(인구 5만 명 규모)에서는 나치 시대 이후 처음으로 극우 인사 로베르트 제셀만이 시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지난 2일에도 작센안할트주에 있는 라군-예스니츠에서 AfD 소속 한네스 로트가 시장으로 당선됐다.
과거 동독 지역 우경화에 대해서는 1990년 독일 통일 전까지 공산주의 국가에 속했던 데다가, 통일 이후에도 서독 진영에 비해 '2등 시민'으로 경제사회적 차별을 받았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티모 라인프랑크 아마데우 안토니오 재단 이사는 AP통신에 "남부 브란덴부르크주는 점점 나치가 '우리의 집'이라고 선언했던 '공포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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