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짚고 선 英참전용사, 전우들 잠든 부산서 아리랑 불렀다

김정엽 기자 2023. 7. 2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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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시그니엘 호텔에서 열린 유엔 참전국·용사 감사 만찬에서 참전용사 콜린 태커리(93·영국) 씨가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연합뉴스

6·25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유엔군 참전 용사 콜린 태커리(93) 씨가 전우가 잠든 부산에서 아리랑을 열창했다. 태커리 씨는 26일 부산 해운대구 시그니엘부산에 마련된 유엔참전국 감사 만찬장에서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전우들을 위해 아리랑을 부르겠다”며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올랐다. 태커리 씨와 함께 참전한 6명 중 4명은 전사했다. 전사한 4명은 현재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그는 “전우들과 무슨 의미의 노래인지도 모른 채 기회가 될 때마다 아리랑을 함께 불러 한국을 떠올릴 때마다 아리랑이 생각났다”며 아리랑을 불렀다. 이 모습을 본 유엔군 참전 용사와 가족 등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태커리 씨는 아리랑 공연에 앞서 ‘You raise me up’을 열창하기도 했다.

태커리 씨는 19살에 영국군 제45야전포병연대 소속으로 1950년 9월 영국을 떠나 6주 뒤 부산항에 내렸다. 태커리 씨는 부산부터 압록강까지 한반도 전역을 2년간 누볐다. 영국군이 6·25전쟁 통틀어 가장 참혹했던 전투로 꼽는 경기 파주시 일대 ‘임진강 전투(1951년 4월 22~25일)’에서 피 흘릴 때 그도 있었다.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 600명이 중공군 3만명과 맞선 전투다.

중공군이 국제노동절(5월 1일)을 기념해 서울을 마오쩌둥에게 선물하겠다는 목표로 인해전술을 펼쳤는데, 전멸을 각오한 영국군의 방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군은 대부분 죽거나 포로가 됐다. 그는 포대 관측병이었는데, 한밤중 본부로 가서 무전기 배터리를 받아오는 찰나에 중공군이 덮쳐 살아남았다.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자인 콜린 태커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지난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연합뉴스

태커리 씨는 노래에 일가견이 있다. 그는 89세에 참가한 2019년 영국의 경연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다. 휴대전화를 팔던 폴 포츠, 동네 성가대원이던 수전 보일이 우승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로그램이다. 그는 6·25전쟁 때도 위문공연단에서 활동하는 등 항상 음악을 가까이했다.

태커리 씨는 경연 첫 회에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내 날개 밑의 바람’이란 노래를 불러 청중을 울렸다. 그의 도전과 노래는 하나의 ‘현상’이 됐고, 결승전 시청률은 약 40%에 달했다. 그는 결승까지 단 3곡을 불렀고, 시청자 800만명의 몰표로 우승을 차지했다. 상금은 25만파운드(약 4억원)였다. 이후 글로벌 음반회사인 데카 레코드에서 첫 앨범을 발매했고, 자서전을 냈으며 2022년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식에서 특별 공연도 했다. 이번 방한 공연은 지난 2월 영국을 방문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아리랑을 부른 것이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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