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어요’ 말 못하는 콜센터 문화
45%가 계약직 ‘고용 불안’
소득 최저임금 간신히 넘겨
65.7% “회사가 일방적 결정”
“감정노동의 가치는 알아주지 않더라도,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원청이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세청 민간위탁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현정씨는 일을 할 때마다 머리 위가 불안하다. 천장에서는 최근 장마철에도 비가 샜다. 센터에 있는 카펫은 오래됐지만 비싼 청소비용 때문에 청소가 잘 되지 않는다. 이씨는 “만성 기침에 고통받는 상담사들도 있다”며 “국세청은 임시방편으로 소형 공기청정기만 2~3대 설치해주고 개선해줬다고 여기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고 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 부족한 휴식, 과도한 콜수 압박, 고객의 폭언·욕설, 신체·정신적 건강 이상 등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대기업·공공기관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데, 간접고용 구조 탓에 노동조건 개선은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민주노총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4월24일부터 5월29일까지 서울·경기·대전·부산 등의 콜센터 밀집지역에서 콜센터 노동자 1278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조 조합원이 660명, 노조 비조합원이 618명이었다. 응답자의 93.0%는 여성이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평균 월 소득(세후)은 220만6000원으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겼다. 여성(219만8000원)이 남성(233만9000원)보다 약 15만원 적었다. 상여를 받는다는 응답은 22.0%였다. 65.7%는 “회사가 노사 교섭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결정한다”고 답했다.
콜센터 노동자 44.9%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계약직의 74.4%는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상시 지속업무에 1년 단위 계약이 발생하는 노동시장”이라며 “극도의 고용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휴식시간·병가·연차도 부족
통증·피로 등 건강악화 불러
“실태 파악…처우 개선해야”
휴식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포함, 실제 휴식시간이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39.4%에 달했다. 11.5%는 30분도 쉬지 못했다. ‘아파도 병가나 연차를 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한국 전체 노동자 평균인 17.2%의 2배가 넘는 39.2%로 나타났다.
아파도 쉬지 못한 이유를 물으니 ‘관리자에게 밉보일까봐’가 26.7%로 가장 높았다.
‘소득이 줄어들까봐’가 25.2%, ‘동료에게 미안해서’가 24.1%, ‘회사가 병가·휴가를 못 쓰게 해서’가 13.1%로 뒤를 이었다.
열악한 환경은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목·어깨·팔 등 상지 통증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69.7%로 한국 노동자 평균인 24.0%보다 높았다. 허리 통증 경험 비율은 66.6%로 한국 노동자 평균인 11.5%의 6배 수준이었다. 만성피로는 67.5%, 방광염 31.9%, 성대결절 26.7%, 우울·불안장애 등 정신과 질환은 31.0%가 경험했다.
감정노동 부담도 상당하다. 주 1회 이상 인격무시를 당했다는 응답은 36.7%, 주 1회 이상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은 33.9%였다. 업무 외적 요구는 30.4%, 악의적 컴플레인 22.0%, 위협·협박 18.7%, 성희롱 등 성폭력은 6.1% 수준이었다.
민주노총은 “50만명으로 추정되는 콜센터 노동자의 사회적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으나 간접고용, 열악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전국 콜센터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분석해 개선 요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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