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의한 편가르기…정전도 위태로운 한반도[정전 70년]
윤 정부, 미·일과 군사협력으로 ‘북핵 억제’…북한은 중·러와 밀착 맞불
신냉전 선명해지며 남북 ‘불통’…‘북·중·러 리스크’ 관리가 정세 변수로
1953년 7월27일 한국전쟁을 중지하기로 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그 후 70년이 흘렀지만 한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남북 대화·협력보다는 긴장과 대결의 시간이 더 길었다. 북한 비핵화와는 멀어지고 되레 군비경쟁이 치열해졌다. 북한은 한·미 동맹 강화에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고, 한·미는 “북한의 핵 사용은 정권 종말을 초래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군사력을 앞세운 ‘힘에 의한 평화’는 ‘핵 대 핵’ 대치로 치닫고 있다.
2023년 남북관계는 한계 없는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북·미 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북한은 “절대 핵 포기 불가”를 선언하고 핵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탄두 소형화·경량화·전술무기화를 목표로 하는 국방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9월에는 5가지 핵무기 사용조건을 담은 ‘국가핵무력정책법’을 공개했다. 자의적 해석에 따라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위협한 것이다.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무기 확대까지 공표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괴뢰들은 명백한 적”이라 규정했다.
한반도 경색 국면 속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웠다. 남북정상회담이 한 해 동안 세 차례 열렸던 문재인 정부의 남북 대화 기조를 “가짜 평화”라고 평가 절하했다. 지난해 12월 윤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는 “북핵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 결의가 핵무기 개발 야욕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줄 때”라고 했다. 북한의 도발을 차단하기 위한 대응수단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와 한·미, 한·미·일 군사 공조 등 강력한 압박책이 주를 이룬다.
전쟁 가능성과 핵 위협이 상존하는 현재 한반도 상황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는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대규모 한·미 군사연습으로 대응한다. 미군의 전략폭격기와 핵추진 항공모함, 전략핵잠수함(SSBN)이 잇따라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다. 특히 수중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은밀성이 핵심이지만 의도적으로 공개 빈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정식 출범했다. 북한은 NCG 출범 전부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13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 연속 담화(14·17일)로 견제에 나섰다. 미국 오하이오급 SSBN이 18일 부산에 기항하자 북한은 평양 순안~부산 거리인 550㎞에 맞춰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핵으로 언제든 응징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한·미·일 vs 북·중·러…‘핵 대 핵’ 대치에 쓸려가는 평화
(2) 위태로운 정전
핵 놓지 못하겠다는 북한과
국방백서에 ‘적’ 규정한 정부
한계 없는 위기 상황 만들어
다음달 한·미·일 ‘3각 공조’
북, 열병식에 중·러 불러 응수
‘신냉전 대결’ 상징 될 수도
강순남 국방상 명의의 지난 20일 담화에서는 SSBN을 겨냥해 미국이 “40여년 만에 처음 조선반도에 전략핵무기를 전개하는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 핵 위협을 감행”했다며 이는 “핵무력 정책 법령에 밝혀진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될 수 있다”고 더 노골적 경고를 내놨다.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질수록 윤 대통령은 한·미·일 3각 공조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다음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일 정상회담은 3국 초밀착 행보의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정상이 다자 국제회의와 무관하게 별도로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관련 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러를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도 맞닿아있어 북·중·러도 새로운 차원의 군사협력 강화로 맞대응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한·미·일 군사협력으로 대응하자, 북한은 중·러와의 밀착 공조로 맞받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7일은 화해와 평화가 아닌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대결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중·러 대표단을 초청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외로 나간 적이 없는 쇼이구 장관을 평양으로 파견해 고위급 군사 외교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방북을 “러·북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고, 양국 협력 발전의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전협정 체결일을 ‘전승절’로 기념하는 북한은 대규모 열병식을 열어 전략무기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열병식에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참석한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중·러의 용인과 북·중·러 3각 공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중·러 군은 지난 20일 동해(중국 매체는 일본해로 표기)서 ‘북부·연합-2023’ 훈련을 개시했다. 동해에서 중·러 연합훈련은 북한의 묵인이나 협력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 공고해지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맞서 북·중·러도 서로를 단단하게 묶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대치 수위가 높아지는 반면 남북 소통 창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여간 남북 당국의 대화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북한은 지난 4월 군 통신선을 포함한 남북 직통선을 단절했다. 지난해 광복절 윤 대통령은 ‘담대한 구상’(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하면 경제·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나흘 만에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거부했다.
정전협정일을 계기로 이뤄지는 북·중·러 고위급 접촉과 내달 한·미·일 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정전 70년을 맞은 한반도 정세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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