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정전 유지’ 권한 넘어 남북관계에 번번이 ‘딴죽’[정전 70년]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월북에 대한 취재진 문의가 밀려들자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유엔군사령부(유엔사)는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엔 사무국과 어떤 연관이나 운영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다”고 말했다. 킹 이병의 월북은 대한민국 국방부가 아닌 유엔사 관할 사안이다. 유엔사는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되고 유엔기를 사용하지만 유엔군 사령관 임명과 유엔사 운영은 미국 정부가 지휘한다.
킹 이병을 두고 북한과의 협상에 임하는 것도 유엔사다. 유엔사는 ‘핑크폰’을 통해 북측과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홍빛 전화기여서 핑크폰으로 불리는 직통전화로 유엔사와 북한은 매일 오전 업무개시 통화와 오후 마감 통화는 기본이고 특별한 사안이 있으면 비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반면 남북 통신선은 3개월 넘게 끊어진 상태다. 북한은 지난 4월7일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한국 측 연락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 무인기 사태 ‘자위권’ 이견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됐지만
미국이 사령관 임명해 운영
북한 무인기에 맞대응 두고
우리 군 자위권과 충돌 빚어
1950년 7월7일 의결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84호와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유엔사에 정전 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할 의무를 부여했다. 한국전쟁에 유엔군을 파견한 데 따른 유엔 차원의 후속 조치 격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정전협정에 어긋나는 우발적인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그 책임은 유엔사에 있다.
정전 체제가 길어지는 사이 남북관계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유엔사 임무 수행이 정부 주권과 부딪치는 듯한 양상이 반복됐다.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질 때는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남북 교류·협력이 한창일 때는 우발적 충돌에 대비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지난해 12월26일 북한의 무인기 사태가 대표적이다. 서울·파주 등 수도권 상공에 북한 무인기 여러 대가 침투하자 군은 무인정찰기를 군사분계선(MDL) 너머 북측 영공으로 날려 보냈다. 여기에는 미국 측과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엔사는 남북이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폴 러캐머라 유엔군 사령관이 한·미 연합군 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관을 모두 겸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더욱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사람이 지휘하는 미군과 유엔사가 상반된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당시 “자위권 차원의 조치”라고 맞선 군은 최근 드론작전사령부 출범을 앞두고 대북 ‘10배 응징’ 원칙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 북한 무인기가 1대 내려오면 평양에는 10대를 올려 보내겠다는 것인데 유엔사와 군 자위권이 맞부딪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유엔사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남북 경제협력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진행할 때도 거세게 일었다. 2018년 남북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하던 남북이 북측 철도에 대한 공동조사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유엔사는 제동을 걸었고 같은 해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북측에 지원하려던 사업도 무산됐다. 2019년 정부가 독일 정부 대표단을 초청해 강원 고성 DMZ 내 감시초소(GP)에 찾아가는 행사를 기획했지만 이뤄지지 못했고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DMZ 내 민간인 거주 지역인 대성동 마을을 방문할 수 없었다.
유엔사가 주권을 침해한다는 비판과 미국이 유엔사를 이용해 남북관계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엔사 임무를 규정하는 정전협정이 군사적 합의인 만큼 유엔사 업무도 군사적 성질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과 같은 일에 유엔사가 제지하고 나서는 것은 과도하다는 목소리다.
유엔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요구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물자와 사람이 남북을 오가는 과정에서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유엔사가 지는 만큼 일정한 절차와 조치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엔사 관계자는 ‘주권 침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난색을 보였다. 유엔사 의무상 한 나라의 주권에 개입할 의지도,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은 유엔사 해체?
남북 경제협력 등에 제동
주권 침해 비판 쏟아지기도
종전선언 이뤄진다고 해도
유엔사 지위에는 영향 없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종전선언은 곧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라는 프레임이 굳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21일 인사청문회에서 “종전선언을 한다면 그런(유엔사 해체와 같은) 주장들이 나올 수 있다”며 “우리 안보에 불리한 명분을 북한에 줘서 안보가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뿐 아니라 유엔사 관계자들도 유엔사 해체와 종전선언은 개념적으로 무관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와 근거는 안보리 결의와 정전협정이다. 이와 달리 종전선언은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선언이어서 유엔사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면 유엔사 존립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이 경우에도 평화협정에 유엔사와 관련된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달렸다는 의견과 평화협정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의견이 나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유엔군 사령관은 2018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두 나라 간 합의이기 때문에 안보리 결의에 따라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한 정전협정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며 유엔 차원에서 별도 해체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앤드루 해리슨 유엔군 부사령관은 지난 24일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며 “유엔 결의에 의해 부여받은 역할과 임무가 완수됐다고 판단되면 유엔사 임무가 종결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정전 상태가 어떻게 종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저희는 발언권이 없다”면서 “항구적이고 확고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그에 도달할 때까지 정전협정은 차선책이며 훌륭하게 유지돼온 협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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