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돼 부산 온 영국 참전용사 “아리랑은 전우와 부르던 노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아리랑을 부를 때 옛 전우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청중 중에는 그들이 없지만, 저 멀리서 내 노래를 들을 것입니다."
26일 6·25 참전용사 콜린 새커리(93·영국) 씨가 정전 70주년을 맞아 약 72년 만에 부산을 찾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19살에 신혼 아내 두고 韓 파병
- ‘갓 탤런트’ 최고령 우승 진기록
- “아리랑 처음엔 자장가인줄 알아
- 전우들 멀리서 내 노래 들을 것”
“아리랑을 부를 때 옛 전우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청중 중에는 그들이 없지만, 저 멀리서 내 노래를 들을 것입니다.”
26일 6·25 참전용사 콜린 새커리(93·영국) 씨가 정전 70주년을 맞아 약 72년 만에 부산을 찾았다. 고령인 그는 휠체어로 움직이지만, 먼저 떠나간 전우를 추억하며 노래할 때만큼은 두 다리로 무대에 서서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27일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협정 70주년·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하루 전인 이날 부산을 찾은 그는 해운대구 시그니엘에서 열린 UN참전용사 감사만찬장에서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과 아리랑을 열창했다. 그는 2019년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 역대 최고령 우승을 차지한 인기 가수다.
국제신문 취재진과 만난 새커리 씨는 아리랑과의 인연이 73년 전이라고 말했다. 열다섯에 영국군에 입대한 그는 열아홉 되던 1950년 9월 신혼의 아내를 두고 제43야전포병연대 소속 포병으로 6·25 전쟁에 참가했다. 그는 “정부가 가라고 하니 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며 “처음 한국에서 배가 정박한 곳이 부산이었다. 열차에 올라 수원으로 향했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느라 닷새가 걸렸다”고 회상했다.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후 1952년 귀국 때까지 격전을 치렀다. 이 시기에 가사 뜻도 모른 채 전우들과 부른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그는 “이제는 아리랑의 가사와 뜻을 알지만, 그때는 전혀 몰랐다. 자장가인 줄 알았다. ‘아리랑’이란 발음이 귀엽다고 느꼈다”고 웃었다. 새커리 씨가 한국을 다시 찾게 된 배경에도 아리랑이 있었다. 지난 2월 영국을 방문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이 노래를 불러준 것을 계기로 초청받게 됐다.
전쟁기간 한국에서 새커리 씨의 첫 임무는 ‘테러리스트’, 즉 북한군을 쫓는 일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여성과 아이를 위협했다. 그들을 쫓아 산을 뛰어 올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국과 비교해 한국의 겨울은 추위가 매서워서 고생이 심했다고 말한 새커리 씨는 “그때 다리에 동상이 걸려 지금도 불편하다. 70여 년 전 겨울은 정말, 정말 추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327고지 전투 등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였고, 6명의 전우 중 4명을 잃었다. 전우들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 600명이 중공군 3만 명과 대치한 임진강 전투에서도 포대 관측병으로 전투에 임했다. 그는 “귀국 이후 다시는 한국을 찾지 않았다.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와서 한국의 발전상을 보니 너무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보훈부는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4시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헌화·참배식을, 같은 날 오후 7시40분 영화의전당에서 유엔군 참전의 날 국제기념식을 개최한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