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장시환의 ‘19전20기’
2년10개월, 날수로는 1036일을 버티며 고대했던 승리가 이리도 손쉽게 이뤄질 일이었나. 패배가 차곡차곡 쌓일 때 불안하고 두렵고 은퇴할 생각까지 한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올세라 입을 앙다물고 콧등을 부여잡았다. 지난 25일 프로야구 한화-키움전 8회초 한화 공격은 1시간8분 동안 이어졌다. 3-6으로 지던 한화가 13점을 뽑아 16-6으로 뒤집었다. 점수가 보태질 때마다 중계 카메라가 한 선수를 계속 잡았다. 바로 앞 7회말에 등판해 공 7개만으로 상대 타선을 삼자범퇴시킨 한화 투수 장시환(36)이었다.
19전20기. 장시환은 이날 승리 투수가 돼 한국 프로야구 투수 최다 기록인 19연패에서 탈출했다. 2020년 9월22일 이후 93경기 만에 따낸 감격의 승리였다. 후배들은 물세례로 그의 고진감래 승리를 축하했고,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간의 지독한 불운과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면서 “나쁜 기운은 내가 다 가져갔고 익숙해졌으니 후배들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꽤 오랫동안 패배의 아이콘이었다. 2020년 2연패, 2021년 11연패, 2022년 5연패. 그리고 올 4월 개막전에서 연장전 끝내기 안타를 맞고 19연패를 당했다. 2011년 심수창의 기록(18연패)을 넘은 것이다. 긴 연패의 불명예를 짊어졌으니 좌절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연패는 역설적으로, 실력과 헌신이 없으면 낼 수 없는 기록이었다. 승부처에서 믿고 내보낼 수 있는 투수로 꾸준히 준비하고 인정받은 결과다. 그는 연패 기간에 14세이브와 7홀드를 올렸다. 빈약한 팀 타선과 불운이 겹쳐 패수가 늘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일세를 풍미한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은 “승리하면 조금 배우는데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운다”는 명언을 남겼다. 지난해 만난 김인식 감독은 “패배를 승리만큼 쌓아봐야 야구가 어렴풋이 보인다”고 말했다. 패배는 불명예도, 실패도 아니다. 패배가 두려운 탓에 시도조차 안 하는 게 실패다. 패배는 아픔을 느끼며 원인을 냉철히 분석하는 출발점이다. 장시환의 19전20기는 승리에 취하지 말고 패배에 기죽지 말라는 얘기다. 세상사도 그렇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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