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출퇴근 특정 시간대 집회금지 시도…“일률 금지는 위헌적”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26일 경찰청 등에 마련하라고 권고한 ‘심야·새벽 및 출퇴근 시간대 집회’ 등에 따른 피해 방지책 중 상당수가 기존 헌법재판소·법원의 판단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고대로 이행 방안이 마련된다 해도, 추후 헌재나 법원 심판대에 서야 할 가능성도 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이용 방해 및 주요 도로 점거 △확성기 등으로 인한 소음 △심야·새벽 집회 △주거지역·학교 인근 집회 등에 따른 피해를 줄이도록 법령 개정 등 이행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무조정실과 경찰청에 권고했다.
가장 논란이 이는 대목은 ‘심야·새벽 집회에 따른 피해 방지’ 권고다. 특정 시간대 집회 금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 5월 자정 이후 집회·시위를 금지하도록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0시부터 오전 6시까지’(윤재옥 의원 안),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박성민 의원 안) 등이 발의돼 있다. 모두 특정 시간대의 옥외 집회와 시위를 원천 금지하는 구조다.
여권은 2014년 헌법재판소 판단을 근거로 든다. 당시 헌재는 ‘자정까지 야간집회는 허용하라’면서 “밤 12시 이후는 국민의 주거나 사생활의 평온, 우리나라 시위 현황, 법감정 등을 고려해 입법자가 결정”하라고 밝혔다.
하지만 특정 시간대 집회·시위에 제한을 두더라도 허가제 형태로 운영해선 안 된다는 게 헌재의 입장이다. 헌재는 2009년 야간 옥외집회 금지 위헌제청 사건 심판에서 집시법 제10조가 야간 옥외집회를 원천 금지하면서,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이 금지 시간에도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대목을 문제 삼았다. 헌재는 이 대목을 ‘옥외집회에 대한 허가제’라며 위헌 판결했다. ‘원칙 금지-예외 허용’의 형태는 ‘허가제’라는 취지다.
최종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집회·시위 인권침해 감시변호단 현장대응팀장)는 “하필 그 시간대에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왜 타당한지, 특정 시간대부터는 집회·시위가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특정 시간대라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제한하게 된다면 헌법이 금지하는 사실상의 ‘집회 허가제’가 돼 위헌적인 입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인 오민애 변호사도 “당정의 입법 시도는 명목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간대를 특정해 ‘일률적’으로 금지한다면 위헌 시비가 있을 수 있다”며 “야간 집회·시위로 인한 문제점은 소음 기준 등 다른 법률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퇴근 시간 주요 도로 점거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라’는 권고 내용도 기존 법원 판단과 부딪힐 수 있다. 출퇴근 시간대 교통소통은 경찰이 가장 빈번히 활용하는 집회 금지·제한 통고 이유인데, 법원에 번번이 제동이 걸리고 있다. 경찰은 ‘오전 6~10시, 오후 5~8시’ 등을 교통소통이 절실한 출퇴근 시간대라며 집회를 막고 있는데 그때마다 법원은 “(집회가) 막대한 교통소통의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경찰의 금지 통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비슷한 취지의 법원 결정이 잇따르고 있지만 경찰은 출퇴근 시간대 도심 집회를 금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 중이다.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대회와 관련해 36건의 집회·행진 신고를 했으나 28건에 대해 전체 또는 부분 금지·제한 통고를 받았다. 이날 대통령실의 권고는 경찰에 ‘법원 판단에 맞서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시간·장소·방법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정부·여당은 마치 집회·시위로 인해 일반 국민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도 없이 불편할 것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김필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기획실장은 “출·퇴근길 집회시위를 제한하겠다고 한 것은 전장연을 표적으로 삼아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고, 입을 막는 조처로 읽힌다. 정부가 정당한 집회시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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