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부터 시청자까지 미치는 트라우마,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노지민 기자 2023. 7. 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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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 언론단체 참여한 언론인 트라우마 위원회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 발간
"취재·보도 과정이 윤리적이면 회복도 빨라…현장기자가 윤리적 선택하게 도와줘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언론인을 경찰, 소방, 의료인과 같은 '3차 트라우마 경험자'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언론인은 장기간·반복적으로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는 “고위험군 직종”인 동시에 취재 대상자나 독자·시청자가 트라우마 영향권에 놓이게 하기도 한다.

언론인과 시청자 모두를 위한 '트라우마 공감 저널리즘'(Trauma-Informed Journalism) 제안이 담긴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이 25일 발간됐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다트센터, 구글뉴스이니셔티브 등이 참여한 이번 가이드북은 언론인 트라우마의 의미와 발생 이유, 대응 방안을 망라한 첫 지침서(다운로드 링크)다.

가이드북은 2021년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기자협회 회원 대상으로 처음 진행한 트라우마 설문조사에서 출발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기자(544명) 10명 중 8명(78.7%)이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답했다. 이후 현업 언론인들이 언론인 트라우마 위원회를 구성했고 트라우마 분야 전문가들이 자문을 맡았다.

▲트라우마 파급 효과. 사진=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

특정 사건 취재·보도로 인한 트라우마는 현장 취재기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다트센터와 BBC 분석에 따르면 △현장에서 직접 사안을 취재한 언론인 △현장에 있었지만 직접 취재하지 않은 스태프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관련 영상에 노출된 영상편집자 △상황을 보고 받은 캡(사건팀장)이나 데스크 △언론인의 가족이나 연인, 동료 △시청자나 독자 등 뉴스 소비자까지 취재·보도로 인한 트라우마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실시간으로 참사 현장이 생중계되고 속보가 이어진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관련 논의가 구체화됐다. 가이드북은 “최근에는 특히 언론 보도를 포털이나 SNS 등으로 24시간, 거의 실시간으로 전 국민이 동시에 접하면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참사뿐 아니라 일상적인 사건사고 보도에서도 독자나 시청자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이나 사진, 영상의 반복 보도는 독자나 시청자들에게도 직접 해당 상황을 겪은 것과 비슷한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흐름에 비해 변화가 더딘 언론 조직의 상명하복 문화는 '도덕적 상해' 유형의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 등지에서 취재한 현장 기자들이 데스크의 지시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거부하지 못하면서 경험한 '유형이다. '도덕적 상해'는 전쟁을 나간 군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민간인을 사살하거나 부상당한 동료를 두고 올 수밖에 없을 때 경험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내가 믿고 있던 가치나 신념이 무너지고 신뢰를 빼앗긴 느낌을 갖는 트라우마를 의미한다.

▲2023년 7월25일 공개된

2018년 미투 운동과 최근 극심해진 정치적 양극화 등이 맞물리면서 언론인을 향한 온라인 공격 또한 심각한 트라우마 유발 요인으로 떠올랐다. 앞선 트라우마 조사에 참여한 기자들도 트라우마를 겪은 상황으로 '현장 취재 과정'(61%)에 이어 '보도 이후 독자들의 반응'(58.4%)을 꼽은 바 있다. 여성 기자는 남성 기자에 비해 '성적 수치심 유발' 피해 비중이 높은 특징도 있다. 미투 보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n번방)을 비롯한 젠더, 페미니즘 이슈를 보도하는 기자들에 대한 공격도 문제로 지적돼왔다.

가이드북은 “온라인 공격은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거나 불안감, 우울감 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언론인의 경우에도 긴장성 두통부터 몸살감기, 불면증과 공황증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현상은 기자들의 취재 어젠다 선정, 취재 과정, 기사 작성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결론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 개인에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데스크에서부터 언론사, 언론유관기관, 미디어학계 등이 함께 관심을 갖고 대처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언론인 트라우마 관련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중 '유가족 취재' 관련 내용 일부. 사진=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

가이드북은 취재에서 보도에 이르기까지 '트라우마 리터러시'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언론인 스스로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동시에 이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이드북은 “'저널리즘 트라우마 지지 네트워크(Journalism Trauma Support Network)'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있는 다트센터 연구 이사 엘라나 뉴먼(Elana Newman) 미국 툴사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언론인들을 상담한 결과 트라우마를 겪었어도 (취재·보도) 과정이 윤리적이었다면 회복도 빨랐다고 전했다”며 “데스크는 현장 취재기자가 가능하면 최대한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유족' 취재 관련해선 “전문가들은 반드시 유족의 인터뷰를 통해서만 참사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취재의 제1원칙은 '관찰'로 현장기자가 상황을 충분히 관찰하고 목격한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이나 싱크 없는 리포트로도 현장 상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특별한 사례나 자극적인 코멘트를 동원하지 않고 어떻게 좋은 보도를 할 수 있을 지 뉴스룸 차원에서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을 인터뷰 할 땐 '1/3법칙'을 제안했다. 대화의 첫 3분의1은 인터뷰 대상자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내용에 집중하고, 3분의2 지점에서 트라우마 사건 자체와 같이 가장 어려운 주제를 다룬 뒤, 후반 3분의1은 현재와 미래에 관해 묻는 방식이다. 가이드북은 이를 “인터뷰가 끝났을 때 여전히 최악의 상황에 완전히 몰입한 채로 누군가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한 배려”라며 “끝나고 취재원에게 인터뷰가 어땠는지, 도움이 되었는지, 귀가 시 교통편이나 현재 몸의 컨디션 등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말을 건네고 감사를 표한다면 언론인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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