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족국가 아닌 스케일 큰 플랫폼으로 봐야”

강성만 2023. 7.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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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차이나 리터러시’ 펴낸 김유익씨

김유익씨가 24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최근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차이나 리터러시’(한겨레출판)를 낸 김유익(52)씨는 2015년부터 중국에서 살고 있다.

처음 2년은 상하이 인근 한 농장에서 생태 중심의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마을 만들기를 시도했고 2018년부터는 광저우 근교 700년 된 마을에서 도시와 농촌 주민들을 잇는 생태 공동체 운동을 펼쳤다. 3년 전에는 광저우 화남농업대 조경학과 교수인 중국인 아내와 결혼도 했다. 광저우에서 한·중 농업인 교류를 이끌다 우연히 만난 그의 아내는 도시에서 먹을 수 있는 채소를 키우는 이른바 ‘도시농업’ 확산에 앞장서고 있단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나와 14년 동안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에서 금융 아이티(IT) 컨설턴트로 일한 그가 삶의 경로를 급변한 계기는 대안교육공간 하자센터 설립자 조한혜정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2011년 유럽계 국제금융 소프트웨어 회사의 도쿄 사무실에서 일할 때였어요. 일본 농촌의 생태문화 운동을 직접 보며 그쪽에 관심을 갖던 차에 조한 교수께서 ‘14년 일했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 같이 일해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는 이 제안을 받아 ‘억대 연봉 일자리’를 반납하고 2년 동안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대안교육이나 마을만들기, 공공예술 분야 활동가로 일하다 중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다국적 회사 시절 베이징과 홍콩, 싱가포르에서 5년 가까이 일했다.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 관심이 있어 중국에 가면 재밌는 일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회사 다닐 때 서양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요. 그때는 대안문화와 생태 쪽 한·중 교류가 전무해 제가 먼저 파면 이 분야 일인자가 될 거라는 세속적인 생각도 있었죠.”

‘차이나 리터러시’ 표지.

6개월 이상 중국 전역을 돌며 탐색한 끝에 처음 정착한 농장에서는 기존 주민들과 함께 생태교육 캠프도 열면서 궁극적으로 대안학교 개설까지 꿈꿨으나 결과는 “실패”였단다. 광저우 쪽으로 옮기고는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 활동을 펼쳤으나 도중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어렵자 그는 중국 에스앤에스 ‘위챗’ 등에 뜨는 정보와 여론 동향을 살피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는 경향신문 연재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로 이어졌다. 이 기고가 바탕이 되어 이번 책이 나왔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지은이는 왜 책을 썼느냐는 말에 “중국에 대한 우리의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누그러뜨릴 수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중국에 머문 8년 동안 한·중 사이의 가장 큰 변화는 “한국에서 반중·혐중 감정이 커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중 감정은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중국 정부가 자국 매체에서 드러나지 않게 통제했지만, 반중적 태도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 들어선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단다.

그는 한국 내 반중·혐중 감정이 커지는 요인으로 둘을 짚었다. 하나는 지난 역사가 보여주듯 ‘극복할 수 없는 큰 존재’(중국)에 대한 원한이며 또 하나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당할 수 있다고 느끼는 공포감이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을 우리와 같은 민족 국가로 보지 말고 스케일이 큰 플랫폼으로 보면 어떨까요. 중국을 비교 경쟁국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미국을 대하듯 잘 활용할 길을 찾는 게 바람직하죠.” 이 제안에 동의 못 할 한국인들이 꽤 있겠다고 하자 그는 “우리가 꼭 미·중처럼 열강이 되어야 하나요”라고 반문했다.

14년간 금융 IT컨설턴트로 일하다
조한혜정 하자센터 설립자 만난 뒤
2015년부터 중국서 생태마을 시도
광저우 근교선 도농 생태공동체도
중국인 아내는 도시농업 확산 앞장

한국서 커진 반중·혐중 감정 통찰
“한국 대 중국 아닌 중국의 지역으로
만날 때 훨씬 부드럽게 풀릴 수 있어”

책 제목처럼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단다. “혐중은 오해 탓도 있죠. 한국인들은 중국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시골 사람들입니다. 도시화율이 64%(2020년 기준)에 불과하거든요. 우린 80%가 넘죠. 어찌 보면 혐중은 농촌에 대한 혐오이죠.”

‘시진핑 독재 비판’을 두곤 이렇게 말했다. “한국 진보 쪽에선 ‘가짜 좌파’라고 중국을 비판하지만 사실 지금 중국 정치는 전통 왕조사회의 유교관료 통치를 나름대로 현대화시킨 정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그렇게 보면 중국이 왜 이렇게 가는지 이해하기 쉬워요. 생활 습관도 우리보다 보수적이죠. 제가 2007년께 베이징에 머물 때는 대가족문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대가족문화가 우리보다 더 많이 남아있더군요. 특히 제가 사는 광둥 지역 마을이 그래요.”

그는 “중국 전문가라는 말이 언어 도단일 정도로 중국은 넓고 깊다”며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중국의 지역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처음 중국인을 만날 때 ‘너 중국인이냐’고 하지 말고 ‘고향이 중국 어디냐’, ‘고향 음식은 뭐냐’고 물으면 좋겠어요. 한국 대 중국이 아니라 한국 대 중국의 지역으로 만날 때 훨씬 부드럽게 이야기가 풀릴 수 있어요. 동등한 눈높이에서요. 지역은 또 중앙의 자의식을 덧쓰고 있지 않아 한국인을 더 환대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가능성이 있죠.”

그는 중국의 역사를 들어 말을 이었다. “제가 사는 광둥 지역만 해도 명청 시기에 지역 엘리트들이 유교관료제와 과거제를 받아들이면서 중화문명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죠. 동남아시아 혈통이 많았던 하층 주민들 일부가 그때부터 족보를 만들면서 한족화합니다. 푸젠 지역은 송나라 때 그런 일이 벌어졌죠.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중화문명에 양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명이 망한 뒤 조선 지식인들이 가졌던 소중화 의식처럼요.”

한국을 보는 시각도 차이가 있단다. “중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한국에 관심이 없지만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둥베이나 산둥 지역은 한국에 대해 애증의 감정이 있죠. 광저우를 비롯한 남쪽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일본을 훨씬 더 좋아하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에 이렇게 바랐다.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적으로 너무 손해가 큰 디커플링(비동조화)보다는 디리스킹(탈위험)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비중비미(非中非美)’를 해야 하는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베트남 등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중국이 위협할 경우 우리의 선택지로 활용해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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