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권영철의 Why뉴스]
세월호, 이태원 10.29, 오송 참사까지…누구도 책임 안져
유가족 대표 "대한민국 국가와 행정기관은 159명의 죽음을 외면"
허성관 전 행안부 장관 "법률위반과 관계없이 행안부 장관이 책임져야"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출연 : 권영철 대기자
◇정다운> 세월호 참사, 이태원 10.29참사, 그리고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까지. 잊을만하면 이런 대형 인재가 벌어집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데 정작 참사가 벌어진 후 책임지는 사람은 애먼 말단 공무원들인 경우가 많고요. 고위공무원의 책임은 희석되기 너무 쉬운 구조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탄핵소추됐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어제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으로 장관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권영철 대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정다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은 어떻게 예상하고 계셨어요?
◆권영철> 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다운> 정치권에서는 기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었는데. 왜 탄핵 쪽을 좀 더 가능성 있게 보셨나요?
◆권영철> 헌재가 국회의 결정을 뒤집는 판단은 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09년 이명박 정부시절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야당에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국회의원의 표결권은 침해했으나 무효는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적이 있습니다.
헌재는 또 올해 3월 검찰수사권 축소를 주요내용으로하는 이른바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에 대해서도 '국회의원의 표결권은 침해했으나 무효는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는 아니다는 희한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당시 한나당의 논평이 "헌재가 미디어법 가결을 유효하다고 밝힌 것은 의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온 사법부의 전통적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헌재가 이번에도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봤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기각이었습니다.
◇정다운> 기각은 예상이 됐더라도,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은 의외이긴 했어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물론 4명의 재판관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 또는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지만, 결론은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이었습니다.
헌재의 결정을 두고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헌법재판을 한게 아니라 형사재판을 했다"면서, 헌재가 이상민 장관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서 정부가 없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됐다고 비판했습니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 들어보시죠.
"각자가 하루하루의 안전이라든지 생명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져야 되는 각자 도생의 사회가 되어 버린 거죠.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닥치는 재난이나 어떤 위험에 대해서 예방조치를 할 책임도 없고 사후적으로 그것을 보존해줄 수 있는 바로잡을 수 있는, 그런 책임을 지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거든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어졌다' 또는 '헌법이 사라진 나라다' 라는 걸 선언한 것에 다름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다운> 헌재가 '헌법재판이 아니라 형사재판을 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권영철> 형사재판에서는 법률 위반을 엄격하게 따져야 합니다.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느냐 마느냐, 또는 유죄냐 무죄냐를 가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헌재의 결정은 헌법정신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합니다. 헌법 제34조 6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상희 교수는 "헌재 35년 역사상 최악의 결정인 것 같다"면서, "윤리의식이나 정의감이 전혀 없는 기계적인 결정, 또 법 해석이나 법리에 충실했다기 보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유가족들은 지난해 10월 29일에 느꼈던 아픔을 오늘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국가와 행정기관은 159명의 죽음을 외면했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행정부 수장뿐 아니라 국가기관의 장은 참사 책임으로부터 면죄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다운> 윤석열 대통령이 끝까지 이상민 장관 책임을 묻지 않고 지켰는데, 그대로 된거네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참사 직후인 지난해 11월 7일 열렸던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책임이라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대로 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시 발언 들어보시죠.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이나 이상민 장관은 법조인 출신입니다. 그러다보니 법률위반이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국정의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이고, 행안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에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ㆍ총괄ㆍ조정, 비상대비, 민방위 및 방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서울시내 한폭판에서 멀쩡한 시민 159명이 사망했는데 책임지는 공직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겁니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서울시장도 경찰청장도 서울경찰청장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정다운>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고위공무원 중에서 책임진 사람은 없지 않았나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긴 했지만,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당시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의 질의와 김기춘 실장의 답변도 들어보시죠.
2014.7.10.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였습니까? 아니었습니까?
김기춘 비서실장 "국가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의하면 재난의 최종적인 지휘본부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이 되는 중앙재난 대책본부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번 상황에 대해서는 청와대 상황실에서 정확한 사항을 파악하고 확인해서 대통령께 보고하는 역할이었지 구조나 지휘한 일은 없습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오보"라며, "국가안보실은 안보·통일·정보·국방 분야를 다루며 자연재해(와 같은 재난상황이)가 났을 때 컨트롤타워는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에는 '국가안보 실장이 국가 재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는데도 책임을 회피한 겁니다.
김장수 전 실장의 후임인 김관진 전 실장은 향후 이 조항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해당 조항을 아예 삭제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다운> 최근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있었는데 여기서도 책임지는 주체가 안보이거든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사고 당일 새벽 금강 홍수통제소가 통보한 내용에 따라 오송 지하차도를 통제했다면 14명의 무고한 목숨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소방 등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김 지사가 "제가 거기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지사의 이 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10.29 참사'와 관련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겁니다.
아무리 대형참사가 났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막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무정부 상태니, 각자도생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어제 헌재 결정을 지켜본 시민들의 말 들어보시죠.
"사고 책임을 최일선의 실무자급들에만 묻고 있다. 전체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 계속 이렇게 벗어난다고 한다면 (사회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우 유감스럽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책임지지 않는다."
"장관으로서 할 일을 못 한 부분이 있는데 기각 결정에 화가 난다."
오송지하차도 참사는 재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정다운> 저희가 오늘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 대형참사들은 제대로 정비가 됐어야 하는 부분이 안됐거나 어딘가 한군데씩 나사가 빠져서 생긴 인재잖아요. 그냥 우연한 사고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대비도 못하고 사후 책임도 못지겠다고 하면, 도대체 나라가 왜 있나 묻게 될 것 같아요.
◆권영철> 사실 그게 핵심입니다.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 기각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들어보시죠.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그렇지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윤석열 대통령이 유감표명을 여러 차례 하기는 했지만 공식사과는 없었고, 책임지는 고위공직자 하나 없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지난해부터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와 성역 없는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답변조차 행정안전부로 떠넘겼습니다.
허성관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정부에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을 질 사람은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행안부 장관 밖에 없다"면서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할 것을 건의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습니다. 허 전 장관은 "설사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손 치더라도 정치적으로 국무총리 또는 행안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출발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다운> 이전에 대형참사가 났을 때 대통령들은 어땠나요? 사과 했나요?
◆권영철> 문민정부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국민앞에 사과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93년 10월10일 서해 훼리호 사고가 나자 발생 8일 만인 18일 임시국무회의를 소집, "새 정부 출범 이래 대형안전사고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는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이듬해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나자 사흘만인 24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이번 사건으로 희생당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애도와 조의의 말씀을 드리며 국민 여러분께 이 사건으로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6월30일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지자 곧바로 다음날인 7월1일 합동분향소를 찾아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고 유족들에게 사과한 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 화재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고발생 사흘만인 2월21일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사과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14일째인 2014년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며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공식사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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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권영철 대기자 bamboo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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