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모두가 불행한 `금쪽이` 나라
"나만 뒤쳐지는 거 아니야? 우리만 벼락거지 되는 거 아니야? 우리 아이만 불이익 받으면 안 되는데."
'포모(FOMO) 증후군'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Fear of Missing Out'의 앞 글자를 따 '포모'라고 하는데, 정식 의학계 용어는 아니고 원래는 마케팅 분야에서 주로 쓰는 말이었다고 한다. '나만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이 용어가 금융투자시장에서 빈번히 쓰이기 시작한 건 코로나 당시 미국의 밈(Meme) 주식이 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였다. 개인 투자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끌어올리는 종목들은 별다른 호재도 없이 폭등에 폭등을 이어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00기업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하는 글이 올라가고 수천개의 '좋아요'를 받고 언론에 오르내리면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는 식이었다. 나만 소외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관 투자자 등 공매도 세력에 대항하겠다는 명분까지 갖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단결한 개미 군단은 경영 상황이 악화되거나 공매도가 크게 몰린 회사들의 주식을 사들이고, 공매도 세력은 더한 손실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공매도한 주식을 다시 사들여야 한다. 이같은 '숏스퀴즈'가 일어나면 이 과정에서 주가가 한 번 더 폭등하는 식이었다.
한국에서는 '밈 부동산'이 우리 안의 '포모'를 건드렸다. 최근 10년새 연소득의 3배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는 청년 가구주의 비율이 2.6배 증가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놀랄 일이 아니다. 뜻밖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면서 시장엔 더 많은 유동성이 공급됐다. 부동산 가격은 뛰고 증시는 빠르게 회복했다. 청년들까지 '빚투(빚을 내 투자)'에 더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까지 감수하며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주식과 코인을 사고 집을 샀다.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와 3기 신도시 등의 공급 계획으로 더 오를 일이 없을 것 같던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급등했다. 나만 혼자 벼락거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차전지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들도 점차 '밈화'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 업체의 주가 띄우기를 위해 사실과 의견을 혼용하고 'K-배터리' 예찬에 애국심까지 빌어와 매수를 부추기는 유튜버들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반면 주가가 너무 높아 추격매수는 위험하다고 경고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빗발치는 개인 투자자의 민원성 신고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유튜버 배터리 아저씨가 사라고 해서 그냥 매수요' '공매도 세력과 붙어먹는 증권사와 언론을 무찌르자'는 글들이 도배되는 사이, 이차전지 기업들은 사상 최고가로 올랐다. 숏스퀴즈라는 우려에도 추격매수는 이어지고 있다. 어제도 한 지인은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월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밈 주식의 몰락을 생각해보면, 글쎄 나는 말리고 싶지만 사실은 모르겠다. 바이탈놀리지의 창업자인 애덤 크리사풀리 같은 시장의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라고 고개를 젓겠지만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는 기자의 생각은 그렇다. 주식은 원래도 펀더멘털(기초체력)만으로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는 사람이고 사람에겐 마음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희망과 절망이 있다. 사람들의 모여진 희망만으로도 주가는 오를 수 있고 누군가는 돈을 벌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나만 혼자 소외되고 뒤떨어져서 고독하고 빈곤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누구는 어디에 투자해서 큰 부자가 됐다고 하고 인스타그램의 누구는 아름다운 이국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나만 뒤처질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인생의 중요한 선택 중 하나인 투자 결정의 중대사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조사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쌓여온 교실 안의 무질서와 학부모의 악성 민원, 교사 인권의 훼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내 아이만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교사와 학교, 사회, 그리고 결국 내 아이를 짓눌렀다. 비극은 이미 일어났지만 우리 안의 불안을 해소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 지면을 빌어 젊은 한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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