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동자들 "OTT로 기회 늘었지만 상대적 격차 커질 우려"

박재령 기자 2023. 7. 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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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 30여명 영화 노동자들 인터뷰 담은 연구보고서 발간
15여년 영화계 노력했던 '표준근로계약' 영화·OTT 시장 모두 약화
24년차 감독 "몇백억 프로젝트, 스타감독 아닌 대다수에겐 바늘구멍"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이 대두되면서 영화·OTT 시장의 구분이 사라진 가운데 제작 현장 노동자들은 글로벌 흥행 기회가 많아진 동시에 노동시장 격차 확대를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편중 현상이 나타났고 OTT 영향력이 커진 이후 영화 스태프의 소득도 줄었다. 특히, 십수 년에 걸친 노력 끝에 개선되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판의 '표준근로계약'이 영화, OTT 시장 양쪽에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 지난 6일 영화진흥위원회 주관으로 30여 명의 영화 현장 노동자 인터뷰를 담은 '영화와 OTT 영상물 제작인력의 근로환경 연구' 보고서가 발간됐다.

지난 6일 영화진흥위원회 주관으로 30여 명의 영화 현장 노동자 인터뷰를 담은 '영화와 OTT 영상물 제작인력의 근로환경 연구' 보고서가 발간됐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수행을 맡아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책임연구, 이준구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가 공동연구에 참여했다.

현재 미국은 할리우드 작가에 이어 배우들까지 파업에 나서면서 수만 명의 인력 이탈로 콘텐츠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들은 넷플릭스 등 OTT 기업의 시장 진출 이후 근로 여건이 악화됐다며 '재상영분배금' 등 공정한 수익을 요구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작가조합(WGA)에 따르면, 1년 가까이 보장되던 고용기간은 10~15주로 줄었고, 최근 10년간 미국의 TV 작가 및 프로듀서 주당 임금 중간값은 대략 23% 떨어졌다.

[관련 기사 : '넷플릭스 착취' 다른 나라 먼 얘기 아니다]

[관련 기사 : 넷플릭스 의존 'K콘텐츠' 전략은 바닥을 드러낼까]

한국에서도 근로 여건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산업 내 자체 인정하는 기능을 했던 '표준근로계약'의 제도화가 OTT 산업 활성화 이후 영화, OTT 시장 모두에서 흐려진 것. 영화계 노사정의 15년 넘는 제도적 실험 결과 실제 영화 현장에선 저임금, 임금체납, 장시간 노동 등이 체계적으로 개선됐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송드라마 제작 환경은 방송사들이 비용 절감 일환으로 외주 제작을 선호하면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노동 환경이 비교적 열악한 것으로 꼽혔다.

▲ '2022년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 심화연구: 영상콘텐츠 제작인력 비교연구'에 따르면, 극장영화 노동자들의 개별근로계약 비중은 50.7%, OTT 현장은 33.7%였다. 사진='영화와 OTT 영상물 제작인력의 근로환경 연구' 보고서

OTT 시장은 현재 영화 현장과 방송드라마 현장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2022년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 심화연구: 영상콘텐츠 제작인력 비교연구'에 따르면, 극장영화 노동자들의 개별근로계약 비중은 50.7%, OTT 현장은 33.7%였다. 방송드라마 현장의 비중은 23.5%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OTT 제작 환경이 방송드라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최근에는 방송드라마 영역의 계약 관행이 선호되는 양상이 관찰된다. 특히 최근 OTT 영역을 경유하여 확산되고 있는 방송드라마 계약 방식은 프로덕션의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제작사와 스태프들 사이의 긴장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 '2022년 영화 근로자 표준보수지침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영화 스태프들의 개별근로계약 비중은 39.9%로 2021년에 비해 25%p 넘게 떨어졌다. 사진='영화와 OTT 영상물 제작인력의 근로환경 연구' 보고서

OTT 시장의 '표준근로계약' 약화는 영화판의 관행까지 흔들었다. '2022년 영화 근로자 표준보수지침 연구'에 따르면,2022년 영화 스태프들의 개별근로계약 비중은 39.9%로 2021년에 비해 25%p 넘게 떨어졌다. 2021년 수치도 201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는데 더 급감한 것이다. 또한 2018~2020년 사이 5~6%를 오가던 팀별 계약이 10% 이상으로, 하도급 용역회사 계약이 2021년 4.5%에서 17.2%로, 프리랜서 계약이 15.5%로부터 28.8%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영화산업 노사정이 그간 노력을 기울여 온 개별 '근로'계약이 위축되고 다시 하위 스태프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가리는 팀별 계약, 혹은 근로 관계를 배제하는 사업자 계약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OTT 산업 활성화 이후 한국 콘텐츠 수요가 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소득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현장 노동자들도 OTT 기업과 작업할 때 유의미한 소득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전에 OTT 구조를 경험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일감이 몰리는 등 상대적인 격차 체감은 오히려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기회구조가 차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경험의 격차가 시장 확대 속에서 기회와 결과의 격차로 커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영화산업이 만들어 온 '표준 제도'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시장의 불안정이 여과 없이 개인의 불안정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18년차 프로듀서 A씨는 “영화 투자 배급사는 말할 것도 없고 OTT에서도 이제 확실한 작품 아니면 확실한 커리어가 있는 제작사들 위주로 좀 컨택을 한다. 여전히 신생 제작사들은 어려운 것 같다”며 “정말 좋은 배우를 섭외를 했거나 아니면 진짜 좋은 감독을 보유하고 있거나 하는 게 아니면 회사들이 대부분 다 공동 제작으로 간다. 제작자가 신인 제작자고 보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보증인 개념으로 공동제작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24년차 감독 B씨는 “사실 프로듀서들이 소화를 다 못할 만큼의 물량이 온 거고, 그것들의 예산이 몇백 억 단위로 커지면서 믿을 만한 사람들한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다. 저희 감독끼리 하던 얘기는 어쨌든 OTT의 입구가 생기긴 했지만 바늘구멍처럼 돼서, 몇몇 스타 감독들만 들어갈 수 있지, 대다수 감독들은 못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 OTT. 사진=gettyimagesbank

실제 영화계 노동자들의 소득도 증가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2023년 조사된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영화인이 1년간 영화를 통해 얻은 총수입이 평균 3020만 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64만 원(2.1%) 감소한 값”이라며 “5000만 원을 초과하는 소득자 비중 역시 11.7%에서 8,2%로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이유로든 OTT 제작 현장의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영화 스태프의 소득이 줄고 있는 상황은 OTT로 인한 임금 인상 효과를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산업 내 OTT 경험 여부를 둘러싼 임금 격차의 심화를 암시하는 결과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OTT 산업 활성화가 현장에 나쁜 영향만 준 건 아니다. 스태프들은 공통적으로 수요가 늘어 제작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 자체가 늘었다고 했다. 개인의 인맥 중심으로 판이 꾸려지던 영화계와 달리 개인의 경력이 중요시 된 측면이 있다. 보고서는 “창의의 장이 확대됐고 도제체제를 벗어나 개인의 경력패스를 구축하는 여지가 넓어지는 등 특히 어느 정도 숙련단계에 오른 영화 노동자에게는 변화가 위기보다는 기회가 된 측면도 크다”고 했다.

15년차 프로듀서 C씨는 “OTT라는 플랫폼이 들어오면서 사실 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만 놓고 보면 영화산업이 어려워진 건 맞는데 다양한 플랫폼이 들어오니까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진 것”이라고 했다. 26년차 감독 D씨는 “시장이 넓어지면서 (현장 스태프들의) 진입은 쉬워졌다. 인력이 너무 안 구해져서 원래 필름 메이커스나 이런 사이트들에서 사람을 구했는데, 이제 (일반 구직 사이트인) 사람인에도 올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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