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공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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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같은 부동산에 비할 정도로 현대 한국인이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는 또 다른 공간 소비품이 있다.
단순히 운송수단이란 표현으로는 오늘날 자동차가 내포하는 의미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
한 대기업 임원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임원용 자동차 카탈로그를 받았을 때라는 것은, 한국인이 자동차에 어떤 의미를 투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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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아파트 같은 부동산에 비할 정도로 현대 한국인이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는 또 다른 공간 소비품이 있다. 바로 자동차다. 단순히 운송수단이란 표현으로는 오늘날 자동차가 내포하는 의미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 발명된 지 겨우 1세기 정도밖에 안 된 기계 덩어리에 자신의 정체성을 연결하는 사람도 흔하니 말이다. 한 대기업 임원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임원용 자동차 카탈로그를 받았을 때라는 것은, 한국인이 자동차에 어떤 의미를 투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생업, 출퇴근, 여가생활, 개인적 취향, 성공의 인정…. 그 다양한 이유로 채워진 도로로 연결된 우리 도시는 매일 소음과 매연에 몸살을 앓고 있고, 대부분 도로는 주차장과 도로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교통정체, 주차장 부족, 그에 따른 과도한 주차비 등 차를 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백가지이지만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차를 끌고 나온다. 더워서, 비 올까 봐, 황사 때문에, 버스 기다리기 싫어서, 지옥철이 싫어서 같은 나름의 이유가 차를 타지 말아야 할 당위성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도시공간이 자동차를 기준으로 재편되다 보니 사람들은 자동차에 집착하게 되고, 사람들이 차로만 움직이니 늘어난 주차장과 차도는 우리의 도시 공간을 더더욱 잠식하는 구조가 굳어진다. 더는 걸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 도시에서 걷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시절이다.
인간은 걸을 때와 운전할 때 주변을 인지하는 행동 패턴이 다르다. 걸어 다닐 때는 서로가 노출되어 주변 사람을 편하게 인지하지만, 운전할 때는 금속과 유리의 엄폐물 속에 봉인돼 버리기 때문에 외부와 격리되며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차단된다. 이런 현상은 차유리 선팅으로 더 심화됐다. 그 속에는 다른 속도와 그에 따른 공간 인지의 문제가 있다. 자동차를 통해서는 극히 제한적인 상호작용, 그것도 대개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관계맺음이 이뤄진다. 한밤 도로 위 레이스를 벌어지는 폭주족, 끼워주지 않으려 옆차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운전자, 다음 신호등에 결국 서게 될지언정 굳이 앞차의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트럭, 겨우 몇초 지체하는 앞차에 경적 세례를 퍼붓는 뒤차, 경차를 아무렇지 않게 위협하는 대형 외제차…. 일상의 스트레스를 차도 위에서 풀려는 것 마냥, 차 속에 숨어버린 우리의 모습은 이토록 적대적이고 치사하고 신경질적이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타인을 공격하고 또 타인에게 상처받는다. 그러나 그들도 포장마차에서 얼굴을 마주한다면 서로 즐겁게 술잔을 나눌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공간이 바뀌면 사람의 행동도 바뀐다.
서울과 달리 자동차의 지위가 한참 아래인 파리에서 평생 살아온 한 프랑스 친구가 서울에서 교환교수로 몇년 지내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매일 당연히 걸어 다녔던 파리와는 달리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동차부터 찾게 되더군요. 친구들과 약속 잡기 전에 나도 모르게 집에 돌아올 교통수단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갈 곳을 정하는 게 아니라 탈것이 내가 갈 곳을 결정하고 있더라구요.”
물론 역사적 문맥도 도시적 전통도 다른 파리와 서울을 이렇게 비교하는 것은 단편적일 뿐 아니라 대개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하나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우리의 도시가 자동차에 더 속박되고 집착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질 거라는 그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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