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은 ‘소비자’ 아닌 ‘조력자’ 부모가 필요하다

한겨레 2023. 7. 26. 18: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왜냐면] 나임윤경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한마디로 스승에 대한 도리를 매일 가르친 어른들이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미화’된 교사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 만큼, 어떤 교사들은 학생 몸에 자주 ‘손댔고’, 잘 사는 집 아이들만 따로 모아 과외로 돈 버는 등 모순적이었다. 학교 영화가 코미디나 로맨스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선 자주 ‘복수극’인 것만 봐도, 그말씀을 잘 따르고 싶었던 교사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스승에 대한 도리를 매일 가르치는 어른들의 한마디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땐 부모들이 교사에게 든든한 ‘조력자’였던 셈이다.

19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교실 이데아’의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사회적 호응이 여러 곳의 대안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가 제도를 견인하며 학교를 변화시키는 듯했지만, 곧 이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으로 변화 대신 강제적 조정과 적응에 들어갔다. 새로운 교사상에 대해 고민할 틈도 없이 교사들은 ‘책무성’ 기조 아래 낱낱이 기록하고 점수화해 평가하는 신자유주의 물결로 빨려들며, 교사 업무에 더해진 엄청난 행정업무로 지쳐갔다. 그 사이 조력자에서 ‘소비자’로, 소비자에서 ‘진상 고객’으로 진화한 일부 학부모와 학생이 휘두르는 다양한 ‘갑질’에 노출되는 등 교사들은 학교와 교육 당국의 보호 없이 맨땅에 자주 내쳐지듯 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체념한 곳에서 교사들은 최근 동료 교사의 죽음을 맞았다.

늦춰 잡아도 2000년대 초반부터 감지됐기에 결코 갑작스럽다 할 수 없는 교사의 권위, ‘교권’ 실추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는 이제서야, 그것도 ‘교원지위법 개정안’ 등 법 중심의 ‘즉각적’이고 ‘미시적’인 해법만을 내놓으려 한다. 대법원 판결조차 자주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고, 최근 윤 대통령의 ‘노래’가 된 이권 카르텔 가운데 가장 심각한 곳이 법조계임에도 정치인들은 또 법에 기대 부산스레 움직이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구조맹(盲) 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에서 찾는 듯하고,여당 청년최고위원은 ‘진보교육감’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때와 달리 지금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의 공교육 이전부터 광활한 ‘교육 시장’에 놓인다. 맞벌이 부부라면 유아원 이전 수많은 ‘이모님’에 대한 반복적 비교·평가 그리고 ‘구매’활동부터 시작한다. 유치원 역시 천차만별의 ‘가격’과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비교하며 상품구매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며 선택한다. 예체능 학원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속에서, 지불한 비용 대비 그 어떤 이익과 권리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교육 소비자’이자 ‘민원주의자’가 양산된다. 이들이 몇 년 뒤 시장 밖 최초의 공교육, 초등학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학교도, 교사도, 자녀의 친구조차도 ‘내돈내산’의 결과라는 듯 평가하고, 맘에 안 들면 ‘반품’하듯 바꾸려드는 소비자 주체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한마디로 교사에게 든든한 힘을 보태던 그때의 부모들과는 공교육에 대한 ‘감각’에서 완전히 다른 종(種)이다. 갑질, 민원, 소송 등으로 그 실력을 갈고닦은 소비자들을, 교육에 의한 인간의 성장을 믿고, 정성스레 그 과정에 동참하려 했던 20대 사회 초년생인 그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나.

그의 마지막 결심에 대한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그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공교육에 대한 ‘소비자 감각’의 성찰로 이어지면 한다. 이러한 노력에 응답하며 정부는 ‘만 5살 초등학교 조기 입학’같은 ‘즉흥적인’ 것 말고, 출생 직후부터 한 아이도 빠짐없이 시장의 소비자가 아닌 공적 보살핌과 질 높은 공교육 시스템의 ‘수혜자’가 되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장시간에 걸친 이러한 구조는 공교육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소비자 감각을 바꿔 나갈 것이다.이런 그림을 그릴 때 정부는 비로소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 개혁을 할 수 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