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콘텐츠 산업도 불공정 구조 고쳐야 혁신 가능"
웹툰·OTT, 불공정 약관·하도급 거래 관행 집중조사
반도체도 실태조사 통해 시장 선점기업 '갑질' 제거
'민생밀접' 통신·금융 '급성장' 플랫폼 반칙없게 유도
프랜차이즈 '필수품목' 개선 방안 9월에 발표할 것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웹툰·웹소설 등 콘텐츠는 우리 경제 성장을 견인할 핵심 산업입니다. 이러한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공정한 경쟁 기반 위에서 혁신이 이뤄져야 합니다. 공정위는 이를 위해 콘텐츠 분야의 불공정 행위 조사와 제도 개선을 올해 중점 과제로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권 때마다 부침이 심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물가관리위원회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문재인 정부 때는 재벌 개혁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경제 검찰 이미지가 강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올 초 업무보고 때는 법무부·법제처와 함께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공정위는 경제 사법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규제 완화, 시장경제 활성화를 통한 경제 활력을 꾀하고 있는 게 현 정부다. 공정위의 역할에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26일 서울 남대문 공정거래조정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한기정(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은 “산업이 발전하려면 공정한 경쟁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반도체와 같은 우리 경제의 주축 산업,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입증된 콘텐츠 산업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라며 “활발한 경쟁을 통해 혁신과 발전이 이뤄질 수 있는 시장 토대를 만드는 데 공정위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담=이상훈 경제부장
그런 맥락에서 한 위원장이 최근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분야도 바로 콘텐츠 산업이다. 한 위원장은 “우리 콘텐츠 산업이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해 왔지만 불공정 관행도 적지 않다는 점이 우려 요인”이라며 “앞으로도 콘텐츠 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그러한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짚었다.
실제 공정위는 콘텐츠 분야의 불공정 근절을 위해 다각도로 대응하고 있다. 올 4월부터 만화·웹툰·웹소설 관련 콘텐츠 제작사 및 출판사·플랫폼 등 20여 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불공정 약관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비대면 시장 폭발로 최근 2년간 2배 이상 성장한 OTT 분야도 감시 대상이다. 한 위원장은 “OTT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불공정 행위도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며 “OTT 분야의 실태를 분석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콘텐츠 거래 조건 등을 상세하게 파악하고자 서면 실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지난달부터 한류를 이끄는 K팝 연예 기획사와 게임사를 대상으로 외주 제작 과정에서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가 있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한 위원장은 “K팝이 최근 5년간 10% 이상 성장해 우리 콘텐츠 산업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매우 커졌다”며 “공정위는 5월 ‘신산업하도급조사팀’을 신설해 첫 번째 직권 조사 대상으로 10개 게임사 및 연예 기획사를 선정했고 현재는 현장 조사를 마무리한 상태”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선 것도 이 같은 한 위원장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며 “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각 분야를 선점한 기업이 경쟁제한행위로 반칙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이번 실태 조사를 통해 반도체 시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불공정한 경쟁의 구조적인 원인이 뭔지,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뭔지 파악한 뒤 반도체 전 분야에 걸쳐 경쟁 촉진과 혁신 경쟁을 유도하려고 한다”며 “시장을 선점한 기업들의 반칙 행위가 해소돼야 우리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달부터 삼성전자에 ‘갑질’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에 대한 제재 절차를 재개한 상태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스마트 기기 부품 공급과 관련한 장기 계약 체결을 부당하게 강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브로드컴은 일종의 자진 시정 방안인 동의의결안을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 구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한 뒤 전원회의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2011년 제도가 도입된 후 처음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건’ 이후 플랫폼 규제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공정위가 올 초 출범시킨 ‘온라인 플랫폼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마지막 회의를 마친 상태다. 한 위원장은 “우리 플랫폼 산업이 국민 경제 활성화나 편익에 기여한 부분은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국내 플랫폼이 성장한 것은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혁신 때문이었고 그러한 혁신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 위원장은 “플랫폼 시장에서 독점이 발생하면 혁신 효과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플랫폼 기업이 해외 플랫폼과 경쟁할 만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 국민이 반칙 행위를 감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플랫폼 전문가 TF에서 우리 플랫폼 산업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 계속 논의했고 그 의견을 참고해 어떤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지 내부에서 모색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공정위가 올 들어 이동통신 3사, 금융권 등을 전방위 조사하는 것도 “시장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공정위를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 사항이기도 하다. 한 위원장은 “자유 시장경제가 작동하려면 독과점과 관련된 시장 반칙 행위에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신념”이라며 “공정위가 목표로 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시장주의를 강조하면서 왜 통신·금융권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서느냐’고 비판하지만 담합 조사는 시장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시장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공정위는 민생 경제에도 역점을 두고 살피고 있다. 공정위는 특히 치킨 프랜차이즈 갑질로 대표되는 가맹본부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필수 품목’ 개선에 나선 상태다. 필수 품목은 가맹 브랜드의 동일성 등을 유지하기 위해 가맹점이 반드시 본부로부터 사야 하는 원·부자재를 말한다. 문제는 가맹본부가 자의적으로 필수 품목을 정하고 점주들에게 이를 비싼 값에 공급해 과도한 이익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 위원장은 “가맹점주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필수 품목 제도 개선 방안을 9월에 발표할 예정”이라며 “지금도 필수 품목 기준이 있지만 이를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민생을 어렵게 하는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다”면서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이를 위반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준을 넘어 필수 품목을 지정하거나 가격을 과도하게 인상하거나 하는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과 조사는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김범석 쿠팡 의장 등 외국인 동일인(총수) 지정과 관련된 제도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최근 한국계 외국인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경우가 나타났고 외국 국적을 가진 동일인 2세도 등장했다”며 “공정위는 동일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하에 외국과 통상 마찰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지속 중이고 연내에는 합리적인 외국인 동일인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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