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성과급 잔치와 도덕적 해이 '이중잣대'

한정연 기자 2023. 7. 26. 17: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마켓톡톡
실업급여 수급자엔 규제 예고
위법한 부동산 PF 성과급엔 침묵

최근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인 이들은 실업급여 수급자, 성과급을 규정을 어겨가며 수령한 증권사 임직원이다. 하지만 둘을 처벌하는 강도가 달라서 '이중 잣대'를 의심케 한다. 실업급여 수령자에겐 더 무거운 '규제'를 가할 태세이지만, 증권사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할 움직임은 약하다. 이유가 뭘까. 이 질문의 답을 2008년 금융위기 상황을 통해 살펴봤다.

정부가 실업급여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 고용노동부가 오래 일했던 사람에게 실업급여를 더 주고, 반복적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보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폐지' 논의도 함께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도 개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실업급여의 지난해 부정수급 규모는 전체 10조원 중 25억원이다. 지난 5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이 지난해 기준 10만2321명에 달한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업급여 하한액을 빈곤선인 120만원 이하까지 내리면 빈곤율의 급격한 상승이 예상된다.

#2. "(성과급 지급 관련) 미흡 사항이 확인된 증권사가 법령의 취지에 맞게 성과보수 체계가 확립·운영할 수 있도록 조속히 지도하고, 자율 개선도 유도하겠습니다." 지난 25일 금융감독원은 현재 부실 논란이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상품을 판매한 22개 증권사의 성과급을 전수조사한 결과, 현행 지배구조법의 성과급 이연 규정을 어긴 증권사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22개 증권사들의 지난해 성과급 총액은 3525억원, 2021년 성과급 총액은 5458억원이었다.

■ 이중 잣대=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사례로 제시한 두 사례에서 보듯 그 대응은 사안별로 차이가 크다. 도덕적 해이를 재단하는 잣대가 이중적인 것은 위험을 누가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도덕적 해이'라고 번역하지만, 실제 의미는 '도덕적 위험'이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상황은 사실 도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는 계약의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의 숨은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 계약자가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오히려 운전을 더 난폭하게 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주인과 대리인 관계에서 대리인의 태만 혹은 과욕으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1000만명의 이주민이 생겼다. [사진=뉴시스]

도덕적 해이의 교과서는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경로, 사회 전체의 손실 규모,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금융위기로 형사고발을 당한 금융회사 임원은 단 한명도 없었고,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위기의 시발점인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 책임의 가격=금융위기의 원인을 조사하던 필 엔젤레이드 미 의회 금융위기조사위원회 위원장은 2010년 1월 13일 의회에서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에게 "골드만삭스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기반 채권을 팔아치운 다음 이 채권이 부도가 나는 것에 베팅했다"며 "나한테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차를 팔고서 그 차 구매자의 생명보험을 사는 것처럼 들린다"고 꼬집었다.

블랭크페인은 "사람들이 돈을 잃어 유감"이라고 답했다가 이후 "회사 차원의 위기관리 연습이었다"고 정정했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는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분노하는 것을 이해하고, 미국 납세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도 "우리도 많은 손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답했다. 계약 상대방들에게 사과하기를 거부한 이 3명의 금융인은 여전히 같은 회사의 더 높은 자리에서 근무하며 업계의 존경을 받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도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을 비판하는 진영은 개인이 위험한 선택을 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가계의 평균 순자산은 2004년 8만4400달러에서 2006년 9만3800달러로 급증했다. 소득과 자산을 뻥튀기해 대출을 받았다가 집을 잃은 집주인들이 기소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부도를 면한 금융회사들과는 달리 주택 압류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집을 은행에 압류당한 미국인은 310만명, 가구원까지 합하면 1000만명이었다. 54가구당 1가구꼴로 집을 잃었다. 2010년 기준 압류된 주택 수는 600만채다.

■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2008년 미국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의회에서 "브레이크가 망가진 차를 팔고, 구매자의 목숨에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는 말이 나왔을까. 사실 2008년 금융위기는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인 모기지를 남발하면서 시작됐다. 대출을 받는 사람은 순자산의 증가라는 인센티브를, 대출을 해주는 사람은 회사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많은 인센티브(성과급)를 받았다.

은행들은 이미 거품이 낀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유동화해 MBS(주택담보부증권)로 만들어 팔았다. 이 과정에서만 모기지 대출 원금이 4~5배가량 늘어났다. 금융회사들은 MBS를 매입한 다음 다시 유동화해 CDO(자산담보부증권)라는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금융회사들은 이런 CDO를 사들여서 이를 담보로 다른 채권들을 섞었고, 이렇게 2차·3차 합성한 CDO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합성 CDO는 부실 위험성에 따라 나눠서 팔았는데, 부실 확률이 높을수록 수익이 많아지도록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CDS(신용부도스와프)라는 파생상품이 등장했다. 은행은 CDO를 인수하면서 원리금 보장을 다른 금융회사를 통해 받고, 대신 CDS 프리미엄을 지불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자산 유동화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 규모를 약 2조 달러로 추산했다. 미국 정부는 AIG를 1820억 달러에 국유화하는 등 구제금융으로 월가에 7000억 달러를 제공했다.

노엘 머레이 체프먼대학 교수는 2017년 11월 '금융 산업과 사회: 2008년 금융위기에서 인센티브와 처벌, 도덕적 해이, 그리고 이해충돌의 역할'이라는 논문에서 "주요 금융 담당 임원들을 적극적으로 기소하지 않은 것이 도덕적 해이를 만든 주요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머레이 교수는 금융위기 당시의 이른바 '플레이어'들로 은행, 금융 전문가, 주식 중개인, 신용평가사, 금융회사 CEO들, 경영대학원 등을 꼽았다. 한편에선 경제 매체를 플레이어로 거론하기도 한다. 위기를 경고하기는커녕 신종 금융 상품의 홍보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댄 실러 팬실베이니아대 교수와 폴라 차크라바르띠 뉴욕대 교수는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신자유주의 매체와 디지털 자본주의'란 논문에서 경제 매체들이 오히려 위기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PF의 부실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는 결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최종 대부자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결국 세금이 자신들의 손실을 메워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은 특정한 상황이나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을 회사가 환수하도록 규정했다. 책임 없는 성과급이 금융위기를 부채질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모기지 대출자들은 리스크를 일으킨 책임으로 집을 잃었지만, 주인-대리인 관계에서 대리인에 속한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성과급만 가져가고 책임은 지지 않았다는 게 머레이 교수의 주장이다. 모기지 대출자가 실업급여 수급자로, 위험한 파생상품 판매자들이 수천억 성과급을 받은 증권사 임직원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도덕적 해이의 이중 잣대는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