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마다 수십조 이동 …'퇴직연금 홍역'
운용 만기도 1년 단위에 편중
채권 매도물량 한번에 쏟아져
단기 유동성 위기 부를 우려도
과도한 자금유치 경쟁도 문제
금융위, 분할납부 법제화 추진
정부가 기업들의 퇴직연금 부담금 납부 시기 분산을 법제화하고 퇴직연금 운용 만기일을 다양화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100조원 단위 자금이 일시에 움직이며 금융기관 간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단기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6일 금융위원회는 권대영 상임위원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퇴직연금 관련 시장 안정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실제 작년 말께 벌어졌던 머니 무브 현상이 이번 간담회를 연 배경이다.
퇴직연금사업자는 기업이 납부하는 부담금을 채권과 주식 등에 배분해 운용한다. 문제는 운용기간 만기가 보통 연 단위로 돼 있고 기업의 부담금 납부도 관례적으로 12월에 몰려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만기가 도래한 퇴직연금 운용상품과 신규 적립금을 합해 수십조 원에서 100조원에 가까운 금액이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논란이 되는 건 채권시장이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 벌어진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사태'로 가뜩이나 채권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문제가 커질 뻔했다. 머니 무브가 일어나면 기존 퇴직연금 운용상품에 포함된 채권을 팔아서 현금화한 뒤 새로운 상품을 운용하는 회사로 넘겨야 한다. 채권시장에서 자금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기간에 수십조 원대 채권 매도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이 신규 납입해야 하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부담금은 38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5조6000억원은 12월에 납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DB형 퇴직연금 운용 적립금이 6월 말 기준 190조8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37.4%인 71조4000억원이 올 12월에 만기가 도래한다. 합해서 100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한번에 움직일 수 있는 셈이다.
DB형만 고려한 것은 가장 규모가 크고 만기 시점이 12월로 몰려 있는 탓이다. 금융위는 우선 금융사부터 퇴직연금을 납입할 때 12월이 되기 전 금년도 신규 납입분의 40% 이상을 두 차례에 걸쳐 분납하도록 지도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타 부처와도 협의해 기업들의 퇴직연금 부담금 납입 시점을 12월에 몰리지 않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금융회사들은 앞으로 퇴직연금 상품을 제공할 때 운용기간을 1년 이외에 1년6개월 등으로 다변화하도록 했다.
또한 금융위는 고금리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규율체계도 확립하기로 했다. 지난해 회사채 시장 경색 등으로 일부 금융권에서 유동성 부족이 일어났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을 유치하고자 무리하게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과당경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을 9월 중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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