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미술사 '잊힌 거장'···임군홍을 만나다
월북화가 30여년만에 재조명
다양한 초상화부터 정물까지
과감하고 수려한 화풍 매력적
가족 보관 100여점 무료전시
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커다란 캔버스에 아내와 둘째 아들, 큰 딸을 그리던 중이었다. 아내의 배 속에는 6개월 된 딸도 있었다. 화가는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가족을 화폭에 담던 중 홀연히 사라졌다. 캔버스를 그가 그림을 그리던 집 마루의 이젤 위에 그대로 놓아둔 채로 말이다. 화가는 ‘월북작가’로만 우리에게 알려진 임군홍(1912~1979)이다. 그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기 보름 전부터 국전에 출품하기 위해 가족을 그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던 중 북한에 끌려갔고, 30년간 ‘잊혀진 화가’가 되었다. 만약 임군홍이 국내에 남았다면 어땠을까.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등과 함께 ‘근대 작가’ 반열에 올라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을까.
임군홍은 1980년 대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지만 또 다시 30년 가까이 잊혀졌다. 이후 그의 이름을 예화랑 김방은 대표가 끄집어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예화랑은 오는 27일부터 9월 26일까지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개인전 ‘화가 임군홍’을 열고 1930~1950년대 120여점을 선보인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신문을 통해 우연히 임군홍을 알게 됐고, 지금껏 이 작가를 몰랐던 이유를 파고들었다”며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예화랑은 1954년 40여 명의 근대 미술가를 대거 모아 전시를 연 ‘천일화랑’을 전신으로 한다. 김 대표는 이완석 천일화랑 대표의 외손녀다. 김 대표는 “만약 임군홍이 북에 가지 않았더라면 한국 사회가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 했을텐데 안타까웠고, 이후 임군홍의 둘째 아들인 임덕진 씨와 우리 가족이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전시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는 김 대표지만 실제로 전시는 아버지의 작품 70여 점을 수십 년간 고이 간직한 둘째 아들 임덕진(75) 씨 덕분에 가능했다. 임군홍의 마지막 국내 작품 속 어머니의 품에 안긴 갓난 아기가 바로 임 씨다. 그는 “이 그림은 아버지가 떠난 후 서울 명륜동 집을 팔고 이사 나올 때까지 이젤 위에 그대로 놓여 있던 그림”이라며 “어머니처럼 내 품에서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가장이 끌려간 후 다섯 명의 자식과 고령의 부모에 대한 부양 책임은 온전히 아내가 맡았다. 하지만 아내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임군홍의 작품과 사진, 스케치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임 씨는 “두 칸 짜리 집에 산다면 방 한 칸은 온전히 부친의 작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됐다”며 “집을 옮겨 다닐 때도 늘 작품 보관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그간의 시간을 회고했다. 추후 임군홍의 미술사적 연구를 위해 필요한 아카이브를 온가족이 수십 년 간 지킨 셈이다. 실제로 임씨는 그림의 일부를 팔기도 했지만 목돈이 생기면 액자를 맞추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복원 전문가를 찾아 훼손된 그림을 복원하며 보관에 생을 바쳤다. 예화랑이 미술관에서나 볼 법한 100점 이상의 근대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는 이유다. 김대표는 “무조건 이 작가를 알리고 이 작가의 작품을 보이고 이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 이 전시를 기획했다”며 “풍운아 화가 임군홍은 미술사적으로 재평가 되고 기려야 할 작가”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임군홍의 다양한 초상화와 중국 시절의 풍경, 정물 등으로 예화랑 3층 전관에서 진행된다. 전시작 중 국립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모델(1946)’은 앙리 마티스를 연상할 정도로 색채가 화려하고, 대상이 도발적이다.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인 ‘소녀상(1937)’은 또 다른 서양화가 마네의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감하고 수려하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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