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묻지마 범죄'와 젠더갈등
'묻지 마 범죄'는 예상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죄 없는 누군가가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서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주 발생한 '신림동 묻지 마 칼부림' 사건도 대낮에, 지하철역 인근 번화가에서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벌어진 범행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오래전부터 살인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는 피의자의 진술은 말문을 막히게 했다.
잠재적 범죄자 관리와 사회 안전망 강화를 위한 논의로 이어져야 할 이번 사건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피의자가 여성과 노인이 아닌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해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여자들 있는데 왜 남자를 공격하지?" "여성, 노인 같은 약자가 아닌 대등한 남성에게만 칼을 휘두른 걸 보니 본성이 나쁘진 않은 것 같네요" 등의 글이 올라오면서 젠더 갈등이 확산됐다. 피해자를 추모하기는커녕 피의자를 영웅시하는 글을 올린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사고의 본질이나 문제 해결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만 주목해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급기야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지목하는 범죄 예고 글까지 올라왔다. '수요일 신림역에서 한녀(한국 여성) 20명 죽일 것'이라는 글을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올린 남성이 25일 체포됐고, '서울 신림동 일대에서 여성을 강간 살인하겠다'는 또 다른 협박글 작성자도 경찰이 추적하고 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묻지 마 살인' 사건 이후 고조된 남성과 여성 간 혐오와 갈등 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인데, 서로 자신들이 피해자라며 상대방 성별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무차별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위험 수위를 넘은 젠더 갈등을 해소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갈등과 대립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뿐이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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