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피고 수능은 유죄'

2023. 7. 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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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교육을 공(空)교육으로 만든 주범은 누구인가. 수능은 암기 위주라는 학력고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1993년 도입됐다. 하지만 현행 수능은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 풀이 스킬만 평가하여 학생들을 한 줄로 등급을 매기는 획일적 제도로 변질된 지 오래다. 처음엔 사교육을 줄이는 수능이라고 했다. 하지만 변별력을 핑계로 만든 킬러문항으로 인해 사교육 열풍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간과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수능의 범죄 혐의점은 차고 넘쳤고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기에 체포·구속되었다.

학생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수능·수시·내신 준비에 몰두한다. 경찰 수사 결과 킬러문항이 학생과 학부모를 정신적·경제적으로 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2025년에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 도입은 현행 수능 체제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기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수능 구속은 전 국민의 초유의 관심을 끌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수능의 목적인 대학 교육을 수학할 수 있는가를 변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변질된 증거를 찾아냈다. 검찰은 국민이 공감할 인공지능(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대입제도를 찾는 데 있다며 공소를 제기했다.

사법부는 재판을 통해 학생·학부모들의 혼란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했다.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피의자 신문과 피고 수능의 최종변론을 진행했다. 검찰의 구형은 수능 폐지다. 재판장은 최종변론을 마치고 판결을 선고했다.

주문 내용은 피고인 수능은 유죄다. 판결 요지는 수능의 폐해가 사교육비에 등골 휘는 학부모·학생들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인 헌법 제10조를 위반했다며 수능 폐지를 선고했다. 재판장은 국민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며 교육계의 뿌리 깊은 헤게모니 싸움을 질타했다. 수능의 문제는 교육·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가 연계되어 있는 미적분보다 어려운 복합적 문제를 안고 있다. 단순히 출제·관리 방식 개선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학벌주의 사회가 아닌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될 때 사교육 및 대입 전형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입을 위해서 준비하는 SAT, ACT, AP를 어설프게 흉내 낸 가짜 수능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AI 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현장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데 효과적인 한국 교육 현실에 맞는 해법을 모색하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형태의 대입은 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으로 다양한 유형 수준, 서술·논술을 포함하고 문제은행식 운영 방식을 도입하라. 오프라인 학교 생활과 온라인 세컨드 스쿨의 학습 활동을 AI가 자동 채점·평가하는 방식을 운영한다면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프라인 유·초등은 보육과 학습에 큰 비중을 두고, 중·고교는 교과학습, 진학은 명품 AI 맞춤형 EBS 강의, 대학생 보조교사의 코칭과 교과학습을 수행하는 온라인 세컨드 스쿨을 통해 이원화하면 사교육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뒤집히지 않는 챗GPT를 활용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라며 재판을 마쳤다.

[박정일 경기도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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