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05분간 ‘전화 7통·원론적 지시’에도···이상민, 성실의무 위반 아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책임을 따진 헌법재판관들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지만 ‘성실의무’를 위반했는지를 두고는 입장이 갈렸다. 이 장관이 공무원으로서 성실히 직무를 수행했는지, 파면에 이를 정도의 위법·위헌적 행위가 있었는지는 이 재판의 주요 쟁점이기도 했다. 3명의 재판관은 이 장관이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면서도 파면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시민사회에선 헌재가 시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단으로 장관 파면의 문턱을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6대 3으로 갈린 ‘성실의무’ 위반, 탄핵 사유로는 부족하다?
이 장관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보면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별개의견에서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 사후 대응 과정에서 “국가공무원법 56조가 규정한 공무원의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국가공무원법 56조는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김·문·이 재판관은 재난안전법 6조를 들어 행안부 장관은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을 때 재난관리의 공백을 방지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장관이 국가공무원법 56조를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했는지 판단하는 전제이자 준거라고 했다. 특히 “재난안전법 6조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여러 기관에 분산돼있던 재난안전 기능을 통합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할 목적으로 도입됐다”며 “행안부 장관이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재난관리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 장관이 이를 어겼다고 판단했다. “즉각적이고 신속한 의사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사실을 찾기 어렵고, (이 장관의) 지극히 원론적인 지시는 급박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2020년 10월29일 참사를 인지한 오후 11시20분부터 현장지휘소에 도착한 30일 오전 1시5분까지 105분간 단 7차례 통화로 보고받고 지시했다.
다만 이들은이 이 장관의 법률 위반이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머지 재판관 6명은 이 장관이 당시 아예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닌 만큼 성실의무 위반조차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과는 다르다면서…“장관 파면 ‘문턱’ 높인 헌재”
헌재의 이런 판단은 일반 시민의 시각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가 ‘간접적으로 국민의 신임을 부여받은’ 장관과 ‘국민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 대통령은 지위·파면 효과 등을 달리 봐야한다고 해놓고는 장관에 대해서도 ‘성실의무 위반의 중대성’에 높은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성실의무 위반은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탄핵심판 때도 쟁점 중 하나였다. 당시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참사 당일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에 관한 파악과 대처 과정에서 자신의 법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했다. 이 장관과 비슷하게 위기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원론적 지시만 한 점 등이 고려됐는데, 이때도 박씨의 이런 위법 행위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장관의 경우 선출된 대통령이 아닌 점, 장관 직무의 의무가 재난안전법에 구체적으로 규정된 점에서 박근혜씨 탄핵심판과 달리 성실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로 인정될 여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파면의 파급효과가 큰 대통령과 달리 장관은 상대적으로 기준을 낮춰 성실의무 위반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헌법적 관점에서 장관의 책임을 어떻게 지울 거냐를 판단하는 탄핵심판에서 헌재가 지나치게 파면의 문턱을 높여놨다”고 비판했다.
윤복남 변호사(민변 이태원참사대응TF 단장)는 “별개의견에서도 (장관의 직무 수행이) 한참 불성실해야 한다고 하면서 성실의무 위반의 중대성 기준을 너무 높게 설정한 셈이 돼 버렸다”면서 “장관의 직무에 대한 헌재의 가치판단은 일반 시민의 눈높이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헌재 판단 내용을 보면 (중대성 기준이) 대통령이 100이라면 장관은 90~95인 셈인데, 이 정도의 높은 허들을 일반 시민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반 공무원 징계엔 수두룩한 성실의무 위반…장관 탄핵 기준은?
고위공직자일수록 성실의무 위반을 더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거부하면 탄핵심판으로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무위원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판례를 보면 일반 공무원은 다양한 상황이 직책 수행 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인정돼 징계를 받았다. 지인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담당 수사관에게 사건을 문의하고 편의 제공을 부탁한 경찰공무원, 군수품을 본인의 집으로 가져와 6일간 사용한 군인, 코로나19 확산 시기 방역수칙을 어기고 회식을 한 소방공무원은 모두 ‘성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이들은 징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성실의무를 어긴 행위에 따른 적법한 징계라고 판단했다.
헌재가 개별 법률 단위로 쪼개어 판단한 탓에 장관 파면의 헌법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관은 전체적으로 재난 상황을 총괄해야 하는 헌법적 책임을 지는데도, 국가공무원법·재난안전법 등 개별 법률 위반 여부를 나눠 따져 책임을 면해줬다는 것이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대통령과 장관은 법 위반의 중대성 판단에 적용할 다른 기준이 필요한데, 헌재는 명확한 법리 설시 없이 ‘중대한 법 위반이 아니다’는 판단만 내놓았다. 개별 사안별로 이같은 결론으로 귀결되면 탄핵 제도의 실효성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탄핵 사유가 안 되는지, 무슨 기준·요소를 고려해 어떤 경우면 탄핵이 되는지 등에 대한 명시적 판단이 없다는 점에서 법리적 차원에서도 아쉬운 결정”이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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