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인삼농가, 가격 하락에 수해까지 ‘이중고’…“농사 포기할 지경”
막대한 피해 발생해 재기불능 우려마저 제기
피해농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영농자금 상환유예, 이자 감면 등 지원 필요
“인삼 가격 하락으로 농사지어도 가뜩이나 남는 게 없는 실정인데, 수해까지 당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영농자금 대출 상환유예와 이자 감면, 만기 연장 등 특단의 지원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25일 찾은 세종시 금남면 원봉리 신운철씨(65) 인삼밭. 최근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4950㎡(1500평)에 달하는 이곳은 15일 물에 완전히 잠겼다. 밭 바로 옆을 흐르는 원봉천이 범람해서다. 금강의 지천인 원봉천은 그 흔한 배수장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금강물이 역류할 것을 우려해 원봉천 배수문을 닫자 밭은 속수무책으로 침수됐다.
26시간여 동안 물에 잠긴 후 모습을 드러낸 밭은 흙탕물을 뒤집어쓴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다. 주로 5년근 인삼을 생산하는 그는 “30여년 동안 이곳에서 인삼농사를 지었지만 이번처럼 물이 높게 차오른 적은 없었다”며 “침수된 밭에서 재배하던 인삼은 올해가 5년째로 곧 수확할 예정이었는데, 이런 기가 막힌 피해를 봐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 곳곳에 역대급 피해를 남긴 폭우성 장마가 끝나고 하늘은 푸르름을 되찾았지만, 인삼농가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3년여간 이어져 온 인삼 가격 하락으로 그렇지 않아도 채산성이 악화한 농가들이 수해까지 입으며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금산인삼농협(조합장 강상묵)은 이번 폭우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인 논산시·부여군·청양군·세종시 등 충남 남부 지역을 관할한다. 농협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2330여명 가운데 신씨를 포함해 138명이 이번에 인삼밭이 침수되는 피해를 당했다. 면적으로는 약 70㏊에 달한다.
세종·공주·청양에 인삼밭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 이상선씨(65)도 엄청난 피해를 봤다. 무려 2만6400㎡(8000평)가 물에 잠긴 것. 이 가운데 9900㎡(3000평)에서는 올가을 수확을 앞둔 6년근 인삼이 재배되고 있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케이지시(KGC)인삼공사와 계약재배를 하는 이씨는 “예정지 관리 기간까지 합해 8년여간을 피땀 흘려 재배한 인삼인데, 그에 걸맞은 소득을 올리기는커녕 손해만 보게 생겼다”고 답답해했다.
인삼공사는 침수 피해를 본 계약재배 농가에 대해 최근 6년근 조기 수매를 결정해 인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이씨도 침수된 밭에서 24일 인삼을 급하게 캐냈다. 일반적으로 완전히 침수된 밭에서는 물 빠진 이후에 5~6년된 고년근의 경우 1주일이 지나면 썩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삼을 캐내기는 했지만 이씨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는 “인삼은 최소한 8월20일쯤까지는 땅속에 있어야 제대로 커지는데 한 달 정도 일찍 수확하는 탓에 무게가 덜 나가고, 벌써 썩어버린 것들도 많아 소득은 예년에 비해 한참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밭이 질퍽거려 트랙터와 채굴기 등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고 일일이 사람 손으로 캐다 보니 인건비도 엄청 많이 들어 남는 게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인삼공사와 계약재배하는 농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금산지역 도매상에게 인삼을 판매하는 대다수의 농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밭에서 하루가 다르게 썩어가는 인삼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침수된 인삼을 헐값에라도 판매하려고 캐내면 자칫 농작물재해보험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수확량이 평년 수확량보다 적으면 그 차이만큼을 보상받는 구조다. 그런데 침수 직후 물을 잔뜩 머금은 인삼은 무게가 많이 나가 캐낸 후 무게를 재보면 자칫 평년 수확량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럴 때 보험금 수령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농작물재해보험 관련 문제가 없다고 해도 침수된 밭에서 인삼을 캐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에 의존해 인삼을 캐야 하는데, 가뜩이나 인삼 가격이 낮은 상황에서 10만원 이상의 일당을 주고서는 캐내 봐야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에 잠겼던 밭에서 나온 인삼은 흙이 많이 묻어 있어 이를 세척하고 건조하는데도 인력과 시간이 추가로 든다.
억지로 캔다 한들 750g(1채)에 잘해야 5000~6000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수해 이전에 6년근 기준으로 2만2000~2만3000원에 시세가 형성된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헐값’이다. 현재 2만5000원 정도는 받아야 인건비 등 비용을 제외하고 그나마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게 농가들의 설명이다.
신씨는 “이런 이유 등으로 수해 농가들은 침수된 인삼밭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며, 금산 지역 도매상인들도 ‘침수된 인삼은 시장에 아예 가져오지 마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인삼공사와 계약재배하지 않는 농가들이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농작물재해보험이다. 하지만 보험금 수준은 피해액에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금산인삼농협 조합원의 재해보험 가입률은 예전보다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64% 수준에 그친다.
강상묵 금산인삼농협 조합장은 “이번에 침수 피해를 본 많은 농가가 인삼 농사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며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농가의 영농자금 대출금 상환을 유예하고 이자를 감면해주는 등 특단의 지원방안을 마련해 시행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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