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칼럼] 내 자식만 귀한 '몬스터 페어런츠'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3. 7. 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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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무력하게 하는 건
학부모 도넘은 갑질·폭언
이런 교실에서 교육 되겠나
교사 방어권 서둘러 보장해야

1980년대가 배경인 영화 '친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교사가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묻고 불꽃 싸대기를 날리는 부분이다. 교사의 체벌과 폭언이 만연했던 교육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장면을 요즘 세대가 본다면 아연실색할지도 모르겠다. "애들은 그때처럼 좀 맞아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을 하는 꼰대들도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매'라기보다 '폭력' 그 자체였다. 비정상적으로 교권이 강했던 시대였다. 살벌한 교실 풍경은 체벌이 금지되고 학생 인권이 향상되면서 달라졌다. 하지만 급변한 교실 모습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교권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폭행이라는 또 다른 폭력이 똬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교실은 지금 붕괴 직전이다.

서울 서이초 새내기 여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은 곪을 대로 곪은 교권 침해 문제가 터지는 '트리거'가 됐다. 사망 경위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23세의 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데 대해 교사들은 "남 일 같지 않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이초 벽에 붙은 메모 가운데는 "나는 2017년에 자살할 뻔한 교사"라며 "학부모들의 오해와 협박으로 우울과 불안장애가 생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글도 있었다.

왜 교실이 이렇게 무너졌을까.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갑질, 교권 보호 장치의 부재를 꼽는다. 교사들이 쏟아낸 교권 침해 사례를 보면 혀를 내두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수업 중 교실에 쳐들어가 소리를 지르거나, 교사를 때리는 것은 부지기수고 "내가 누군지 아느냐?" "애는 낳아봤느냐" "올해 결혼할 계획이 있으면 방학 때 했으면 좋겠다" 등 무례가 도를 넘는다. 모닝콜을 해달라, 틀린 문제에 빗금 대신 별표를 해달라는 비상식적인 요구도 넘쳐난다. 과거에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거늘 교사를 종 부리듯 하는 것이다. 내 자식만 귀하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교사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 보다. 일본에서 수년 전부터 이슈가 된 '몬스터 페어런츠'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학부모들의 고소 남발로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고발당한 사례는 1254건에 달했다. 아동학대로 신고만 당해도 곧바로 직위해제가 되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 자칫 소송에 휩쓸릴까봐 교사들은 악성 민원에 대응조차 못하고 있다. 부모가 교사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니, 학생들이 뭘 배우겠나.

교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학생인권조례'가 뭇매를 맞고 있다. 2010년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해 경기도를 시작으로 도입한 학생인권조례는 체벌과 차별, 소지품 검사 금지 등의 규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조례는 서울·경기 등 7개 시도에서만 시행 중이어서 전국적인 교권 침해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조례 내용 중 과도한 학생 인권 존중이 교권을 위축시켰다면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권과 인권은 서로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 인권이 희생될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교권 강화가 '아버지 뭐하시노' 때와 같은 매 맞는 시절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지 않나. 정쟁화하기보다는 현장 의견을 수렴해 교권과 학생 인권을 동시에 높이고 공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아동학대처벌법의 무분별한 적용을 막는 것이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아동학대 면책이 필요하다. 또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하고, 수업 방해 시 제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교실 붕괴를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공교육 전체가 무너진다. 교사들이 무력감에 빠진 교실에서 창의와 인성이 자랄 수 있겠는가.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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