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효석문학상] 날 괴롭히던 아이가 죽었다…그 엄마는 나를 계속 찾아온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7. 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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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심 진출작 ②
안보윤 '애도의 방식'
폐건물 7층서 중학생 추락사
유족과 목격자의 갈등 다뤄
가학·피학 관한 소설적 은유

◆ 이효석 문학상 ◆

터미널 앞 찻집에서 일하는 동주의 이야기다. 찻집이지만 햄버그스테이크와 콩나물국밥도 판매하는 미도파 찻집. 중학생 동주는 졸업식을 일주일 앞두고 타지로 떠나려 터미널에서 티켓을 샀다가 미도파에 눌러앉았다.

동주의 일터이자 도피처인 찻집으로 한 여자가 방문한다. 나무 문을 밀고 들어온 여자는 메뉴판을 펼쳐놓고 동주를 부른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동주야, 진실을 말해줘."

여자가 동주를 찾아왔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교실로, 집으로, 경찰서로. 여자는 동주를 찾아와 불러 세운 뒤 진실을 알려 달라고 애원했다. "제발, 제발 딱 한 번만." 그럴수록 동주는 말을 잃었다. 여자는 반복해 말했다. "동주야. 진실을 알려줘."

여자는 죽은 승규의 엄마다. 승규는 폐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 짓다가 관둔 건물 7층. 썩은 합판에 잘못 기대면서 승규는 죽었다. 승규가 죽던 날 동주가 함께 있었다. 동주만이 승규의 마지막 모습을 안다.

안보윤의 단편 '애도의 방식'은 한 중학생의 죽음 이후 유족과 목격자의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다. 사실 동주는 학폭 피해자였고 승규는 학폭 가해자였다. 승규는 동주에게 88올림픽 기념주화 동전을 던진 뒤 앞뒤를 맞추라 하고는 동주의 선택을 확인도 하기 전에 뺨부터 후려갈겼다. 승규가 죽은 뒤 두 아이의 '관계'가 알려진다. 동주는 의혹의 중심에 선다.

학폭을 다룬 서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뻔하지 않다. 안 작가는 가해와 피해의 도식을 전환시킨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학폭 피해 사실을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진실을 은폐해야만 하는 기이한 역전. 동주 부모는 말한다. "남자애들끼리 좀 치고받고 놀 수도 있죠. 괴롭힘을 당했다니, 대체 누가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확인할 수 없던 동주처럼 진실은 언제나 단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도파 찻집에서 파는 기준 없는 메뉴판처럼 현실 속에 감춰진 진실이란 늘 뒤죽박죽이다. 동주가 승규를 향한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선 승규의 죽음을 알려야 할까, 끝내 덮어둬야 할까. 가학과 피학, 위력과 무력, 회피와 맞섬, 실재와 왜곡 등의 주제의식이 문장마다 촘촘하다.

심사위원인 이경재 평론가는 "안보윤은 요즘 폭발적으로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쓰는 작가, 열심히 쓰는 작가에게는 당할 자가 없다"며 "학교폭력 가해자가 죽었다는 단순한 서사를 이렇게 써낼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평했다. 심진경 평론가는 "'안보윤의 재발견'이다. 안보윤 소설에 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애도의 방식'을 읽으면서 안보윤의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정이현 소설가는 "'죄란 무엇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라는 주제, 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1981년 인천 출생 안보윤 작가는 명지대에서 사학과 문예창작학을 공부했으며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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