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노인 된 1세대 이산가족…“그림에서나마 어머니 업어드립니다”
이산가족 얼굴을 그림으로 기록
“나는 이제 백발노인이 됐는데 우리 어머니는 여전히 곱지요.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학교 다녀오겠다’며 인사했던 1947년 9월 23일 그날과 똑같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이틀 앞둔 25일 경기 파주시 한반도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이곳에서 이달 17일 개막한 ‘그리운 얼굴’ 전시를 둘러보던 ‘1세대 이산가족’ 심구섭 씨(89)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향인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등에 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 ‘침묵의 강’ 앞에 선 그가 손을 뻗어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동양화가인 이만수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62)가 2017년 심 씨와 대화를 나눈 뒤 3개월간 그린 이 작품 속 심 씨의 어머니는 주름 하나 없이 고운 얼굴이었다. 심 씨는 76년 전 그날의 어린 아들이 된 듯 울먹이며 말했다.
“장남이 돼서 어머니 한 번 업어드리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었는데…. 이렇게 그림 속에서나마 어머니를 업어드립니다.”
전시를 주관한 사단법인 ‘우리의 소원’은 심 씨와 같은 1세대 이산가족과 예술가를 일대 일로 연결해 그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를 2017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조각, 회화, 사진 등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 신청한 1세대 이산가족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작품으로 남긴다. 현재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와 1세대 이산가족은 각각 56명. 완성작은 ‘그리운 얼굴’이라는 특별전을 통해 무료로 선보이고 있다. 작품 56건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열린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하종구 ‘우리의 소원’ 상임이사는 “분단국가의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다 뜻이 맞는 예술가들과 함께 분단의 역사를 살아온 1세대 이산가족의 얼굴을 기록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산의 한 기록하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
심 씨는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의 1호 신청자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약 20㎞ 떨어진 신상. 1947년 9월 17일 13세였던 심 씨는 이념대립을 피해 먼저 월남한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나 강원도로 향했다. 온 가족이 다같이 떠나면 삼엄한 북측 감시망을 피할 수 없어 고향 집에 열 살 남동생을 두고 왔다. 어머니는 심 씨가 강릉사범중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 네 살 난 여동생을 등에 업고 둘째 아들이 남아 있는 북으로 향했다. 심 씨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제 교복을 다려 입혀주시고는 대문 밖에서 ‘학교 잘 다녀오라’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저는 그 순간이 마지막인 줄도 몰랐지만 어머니는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직감하셨나 봅니다. 고향을 떠나기 2주 전 제 생일날 가족사진 한 장을 찍었어요.”
심 씨의 이야기로 그림을 그린 이 교수는 “그림 하나로 분단으로 이별한 이들의 한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다만 나는 예술가로서 이 그림을 통해 엇갈린 두 모자가 영영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순간을 염원했다”고 했다. 심 씨는 “1947년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사진 속 어머니의 눈매와 그림 속 어머니의 선한 눈매가 똑같다”며 미소 지었다.
●“그림 덕에 고향에 두고 온 추억 찾아”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인 김명철 씨(87)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린 시절 고향에 두고 온 추억을 찾았다”고 했다. 21일 전화로 만난 김 씨는 고향 집을 홀로 떠나던 1950년 12월 7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열네 살이던 그는 그날 사이렌이 울리자 대문 앞에서 어머니에게 “일주일 뒤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집안의 막내였던 그가 노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못했다. 설상가상 쌀자루에 한가득 담아온 가족사진마저 흥남철수작전 때 흥남부두 앞에 다다라 도둑맞고 말았다.
“사진을 쌀자루에 넣어 왔으니, 쌀이 든 줄 알고 누가 훔쳐가 버린 겁니다. 도둑맞은 추억에 미련 갖지 않으려 일부러 자식들과 아내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차라리 내게 남은 추억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으니까요.”
그런 김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그린 이익태 작가(76)는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때 소고를 배웠다고 말하는 김 씨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미소를 포착했다. 이 작가가 군용 담요 위에 그린 작품 ‘심장의 북소리’ 속 김 씨는 손에 소고를 들고 있다. 희미했던 김 씨의 옛 추억이 그림 속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난 것. 김 씨는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그림을 본 뒤 “고향의 기억을 모두 잊고 살아왔는데, 이제 이 작품 하나가 내게 남았다”는 말을 남겼다.
●“단 1명이 생존할 때까지 그릴 것”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3675명 중 생존자는 4만2624명(31.9%)이다. 생존자 비율은 꾸준히 줄어 2025년 3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연령은 83.2세. 2년 뒤 80대 이상 비율은 68%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고 양철영 씨를 비롯해 ‘그리운 얼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산가족 2명이 작품을 보지 못한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기간 세상을 떠났다. 하 이사는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2년 반 넘게 멈춰 있던 프로젝트가 이달부터 다시 시작된 이유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실향민 윤일영 씨(87) 자택에 22일 김서경 조각가가 찾아왔다. 윤 씨의 고향은 경기 연천군 경순왕릉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단군 장도면 오음리(미수복지구). 그는 휴전선에서 약 3㎞ 떨어진 고향 풍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 이렇게 말했다. “고향 뒷산을 이렇게 지척에 두고 나는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에 따르면 250명이 넘는 이산가족과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작품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 이사는 “단 1명의 이산가족이 생존해 있을 때까지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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