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발행사 '실적 뻥튀기' 없앤다…코인도 '공정가치' 측정
코인 공정가치 측정에 '활성 시장' 요건…규모 큰 거래소 시세만 공정가치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가상자산(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보유한 기업이 코인 가치를 통해 실적을 '뻥튀기'할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26일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 회계감독 지침(안) 찾아가는 설명회'를 통해 가상자산사업자들에게 가상자산 회계 처리 방법을 안내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드림플러스에서 열린 설명회는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원,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공동주최하고 디지털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가 후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1일 가상자산 회계감독 지침안과 주석공시 의무화 기준서 개정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 2020년 초부터 '회계기준 적용지원 실무작업반'을 마련하고, 가상자산 회계 처리 방안을 논의해온 결과다. 이날 설명회는 가상자산사업자 및 회계법인 등을 대상으로 지침안에 대한 내용을 세세히 안내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행한 가상자산 팔면 수익?…"투자자에게 '의무 이행'한 후 수익으로"
가상자산 회계 처리 및 주석공시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가상자산 발행사다.
기업이 자체 발행한 가상자산을 매각하고, 이를 매출로 처리하는 것과 관련한 논란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따라서 이번 지침안을 통해 발행 기업의 실적 기준이 명확해질 전망이다. 사실상 '실적 뻥튀기'는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선 금감원은 가상자산(토큰) 개발과 토큰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는 비용을 구분할 수 없다고 봤다. 구분할 수 있다면 발행한 토큰을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를 구분하기 힘드므로 토큰 발행 및 플랫폼 개발에 쓰인 원가를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날 발표를 맡은 윤지혜 금감원 회계관리국 국제회계기준팀 팀장은 "토큰은 미래에 경제적 효익을 창출하므로 토큰만 개발된 '현재' 시점에서는 자산으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발행한 토큰의 유상 매각은 발행사가 회계 처리 시 가장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금감원은 토큰 판매 시, 투자자들로부터 대가를 미리 수령했더라도 발행사가 토큰과 관련해 이행하기로 한 의무를 모두 이행한 후에 수익으로 인식하라고 했다.
통상 가상자산 발행사들은 '백서'를 통해 토큰 가치를 높이고, 토큰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어떻게 확장할지 계획 및 의무를 소개한다. 이 같은 계획을 이행한 후에 수익으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윤 팀장은 "명확한 증거 없이 발행자(발행사)에게 부여된 의무를 변경해서 (토큰 판매로) 받은 대가를 수익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일관성 있게 적용하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의무 이행을 결정 짓는 것은 '블록체인 플랫폼의 완성 여부'가 될 전망이다. 발행사가 토큰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을 완성해야, 투자자들에 대한 발행사의 의무가 이행됐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단, 플랫폼이 언제 완성됐는지에 대해선 회사가 직접 판단할 수 있다고 윤 팀장은 밝혔다.
발행사가 파트너사 등에 지급한 토큰은 '용역에 대한 대가'로 보고, 부채로 인식한다. 또 마케팅 목적으로 에어드랍(무상 배포)한 토큰은 배포 시점에는 회계 처리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에어드랍 물량은 시장에 풀린 물량이므로 투자자들에게 의무를 이행하는 시점에 수익에서 차감하면 된다.
이외 발행사가 토큰을 발행한 후 시장에 유통하지 않고 남겨둔 물량, 즉 유보 물량(리저브 물량)은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단, 유보 물량 수량과 향후 사용 계획은 공시해야 한다. 윤 팀장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유보물량이 굉장히 중요한 정보"라며 "유보 물량에 대한 공시 요구를 전 세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인 '공정가치' 측정 어떻게?…'활성 시장' 요건 추가
가상자산 발행사의 '가짜 실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가장 큰 이유는 금감원이 가상자산을 공정가치로 측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발행사의 가상자산은 주로 무형자산으로 계상한다. 무형자산으로 계상 시 주기적으로 손상 여부를 검토하고, 공정가치로 측정할 땐 재평가모형을 적용했는지 여부에 대해 공시해야 한다.
가상자산의 시세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는 재무제표 상 수치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어떤 기준으로 시세를 반영하는지에 따라 실적을 '뻥튀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에 금감원은 공정가치 측정에 '활성시장' 조건을 넣어 가짜 실적을 방지했다. 활성시장이란 지속적으로 가격 정보를 제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빈도와 규모로 자산 또는 부채를 거래하는 시장을 뜻한다.
가상자산 시장은 한국거래소(KRX) 같은 제도화된 거래소가 없다. 따라서 가격 정보가 충분할 정도로 거래량이 많이 나오고, 거래 데이터가 정확한 거래소를 '활성 시장'으로 보고, 이 활성 시장을 기준으로 공정 가치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량이 적은 일부 탈중앙화 거래소(DEX)나 해외 소형 거래소의 시세로 실적을 '뻥튀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윤 팀장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활성 시장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상자산 시장은 증권 거래소처럼 제도화된 거래소가 없다 보니 활성 시장에 있어 고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래 규모가 충분한지 고려할 필요가 있고, 데이터 원천의 신뢰성이 높아야 하며 법정화폐로 교환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설명에 따르면 코인 간 거래만 지원하는 '코인마켓' 거래소는 활성 시장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국내 거래소 중에선 원화와 코인 간 거래를 지원화는 5대 원화마켓 거래소여야 하고, 그 중에서도 거래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 나오는 곳이어야만 활성 시장 요건을 충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 "공시 강화도 국회 '2단계 입법' 사전 작업"
금감원은 이번 회계 지침 마련으로 가상자산 기업과 외부감사인 간 이견이 줄어들고, 불확실성이 감소할 것으로 봤다.
또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금감원은 전망했다. 윤 팀장은 "가상자산 회계 지침을 마련하는 동안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며 "(국회는) 최소한의 규제를 마련했고, 향후 2단계 입법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회계 감독 지침과 공시 강화도 이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침 및 기준서 개정안에 대한 업계의 건의사항은 오는 9~10월 '가상자산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논의할 예정이다. 간담회 구성원은 금감원과 회계기준원 및 한국공인회계사회 등 유관기관, 학계 전문가 등 총 14명이다.
지침과 기준서 개정안은 회계제도심의위원회 및 증선위 심의·의결등을 거쳐 오는 10~11월 확정될 전망이다. 주석공시 의무화는 오는 2024년 1월 1일 이후 최초로 개시되는 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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