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 금융 본업에 충실하려면 한전 만년적자 속히 해결해야
◆ Big Picture ◆
단군 이래 최대 분식회계를 2015년에 자백한 대우조선해양과 2022년 시가총액의 3배에 이르는 34조원의 영업손실을 공표한 한국전력공사는 공통점이 있다. KDB산업은행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대우조선 분식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국민연금을 비롯한 다수의 주주 그룹이 대표이사부터 사외이사까지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일부 사외이사는 산은의 실적 압박에 책임을 돌렸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유발한 엄청난 한전 적자는 지분법과 연결회계를 통해 산은 결산서에 그대로 전가됐다.
건전성 비율이 추락한 산은에 윤석열 정부는 국유재산 최후의 보루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을 현물출자로 털어 넣었다. HMM과 아시아나항공, KDB생명 등 남은 부실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산은이 생존을 위해 '국민 주거생활 향상'이 임무인 LH에 해마다 이익배당을 요구하게 생겼다.
대우조선 분식회계는 2015년 9월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가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면서 공론화됐다. 외부회계감사를 계속 맡았던 안진회계법인은 2016년 4월 2015년 결산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2013년과 2014년도 결산을 수정했다. 당초 발표된 영업이익이 각각 4000억원 이상이던 2013년과 2014년에 실제로는 영업손실이 각각 7000억원이 넘었다. 2년 동안 2조4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익을 조작한 것이다.
분식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장기간이 소요되는 선박 건조는 기간별 이익을 배분하는 진행률 기준으로 수익을 계상한다. 계약금액에서 총예정공사비를 차감한 공사이익을 공사 기간별로 배분하는데, 그 기준이 누적발생비용을 총예정공사비로 나눈 진행률이다. 대우조선이 총예정공사비를 적게 잡는 수법으로 공사 이익을 앞당겨 계상한 것이다.
총공사예정비를 낮추면 공사 진행 중에는 이익이 늘지만 완성 시점에는 실제로 발생한 총공사비를 정산하기 때문에 이익이 대폭 줄거나 오히려 손실로 결판난다. 수정 후 손실로 인해 자본총계는 대폭 줄었지만, 손익 계산과 관련 없는 부채는 변동이 없다.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 고발 이후에 실시된 2015년 결산은 제대로 이뤄져 수정사항이 없다.
이런 유형의 분식회계는 현금흐름표에서 그 징후를 미리 알 수 있다. 현금흐름표는 현금(현금성 자산을 포함)의 유입과 유출을 영업활동·투자활동·재무활동으로 구분해 표시한다. 진행률 조작으로 기간별 손익을 부풀려도 현금수지는 별개로 집계되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우조선이 이익이 생긴 것처럼 분식한 2013년과 2014년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순유출(마이너스)로 나타났다. 손익계산서는 순이익으로 표시됐지만 이익의 질(quality of earnings)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2015년에도 영업활동과 투자활동 현금흐름이 순유출인데 분식 적발로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차입은 오히려 늘었고 연말 현금잔액은 전년 말 176억원에서 1조722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매각이나 청산보다는 존속시키려는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고집이 현금흐름표에 그대로 표출됐다.
2019년 3월에는 현대중공업 산하 한국조선해양에 대우조선 주식 55.7%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을 포함한 6개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했다. 일부 국가는 조건 없이 승인했으나 유럽연합이 불허 결정을 내려 인수는 무산됐다. 과거 매각 논의가 있을 때마다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유럽연합의 불허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는데 사실로 확인됐다.
우여곡절 끝에 한화그룹이 2022년 12월 지분 49.3%에 해당하는 대우조선 신주를 인수했고, 2023년 5월 대우조선은 한화오션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인수 가격은 과거 한화그룹이 중도 포기할 때 계약금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동걸 산은 회장이 자진 사퇴했고, 강석훈 신임 회장이 총대를 메고 결단해 23년이나 끌어온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대우그룹 워크아웃이 시작된 이래 산은과 수출입은행에 투입된 대우조선 관련 국고가 10조원 이상이지만 실제 회수금액은 미미했다. 매각과 독자생존 사이를 맴돌며 시간을 허비했고 산은 자체도 3개 회사로 분할했다가 다시 합병하는 등 어수선했다. 산은 전임 회장과 대우조선 사장 등이 협력업체로부터 뇌물 수수, 분식회계로 장기간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한화오션으로 사명까지 바꾸고 새로 출발한 대우조선은 한화그룹의 역량을 집결해 HD현대 및 삼성중공업과 제대로 경쟁하면서 한국 조선업을 초일류로 이끌어야 한다.
산은이 한전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은 대우조선과 달랐다. 한전은 정부가 지분 전부를 보유하다가 1989년 국민주 방식의 신주공모를 통해 상장기업이 됐다. 특별법인 한국전력공사법이 모법이고 산은 지급보증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정부 보유 한전 주식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에 계속 현물출자돼 현재는 정부가 18.2%, 산은이 32.9%, 기타 주주가 48.9%인 구도다. 한전 주식의 외국인 보유 한도는 40%인데 근래에는 한도의 '3분의 1' 수준으로 투자가 유지되고 있다. 2022년의 대규모 결손으로 한전 주가는 2016년 최고점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전의 실적 추락은 급격했다. 2020년 2조7851억원이던 영업이익이 2021년에는 7조4256억원의 영업손실로 돌아섰고 2022년에는 34조원으로 악화됐다. 2021년에는 영업활동에서 7조원 이상 현금을 벌었는데 2021년부터 순유출이 생기더니 2022년에는 순유출이 29조4420억원으로 폭증했다. 재무활동에서 추가적으로 조달한 부채는 37조5461억원이다.
지옥으로 추락한 실적의 배경은 소비량이 줄어든 것도, 판매단가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2022년 영업손실 급증에 대해 한전 결산서는 "판매단가 상승에 따른 전기판매수익 증가(16%)와 구입전력비 증가(63%) 등이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발전원의 배합에서 원가가 낮은 원전 비중은 대폭 줄고 원가가 훨씬 높은 태양광 등이 급증한 것이 문제다. 원래 2010년 5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24년의 원전 비중은 48.5%였는데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실제 비중이 대폭 축소됐다.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계획을 조기에 착수해 신규 원전 건설을 통해 원전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한전은 1989년부터 유가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한 공개 기업이다. 1994년에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해 거래하고 있다. 상장기업인 한전이 탈원전으로 원가가 치솟아 손실이 급증하는 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대표이사와 이사를 상대로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대주주인 정부와 산은이 탈원전 정책 추진을 위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침탈한 터널링(tunneling)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정책 및 경제 참모진에는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했던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출신 인사가 많은데 이와 관련해 아무 말이 없었고 관련 시민단체도 침묵했다. 한전이 누적 결손을 해소하고 적정 수준의 배당을 지급하면 산은의 건전성과 사업 추진력도 개선된다. 원전 정상화를 앞당겨 한국 원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되살려야 한다.
산은의 설립 목적은 '산업 개발·육성, 사회기반시설 확충, 지역 개발, 금융시장 안정 및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의 공급·관리다. 주된 목적은 산업의 개발·육성을 위한 산업금융이다. 대우조선 매각과 같은 부수적 업무보다는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금융에 충실해야 한다. 기활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에 의한 사업 재편을 추진하는 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조달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금융감독원 지원을 받아 시중은행과 업무협약(MOU)을 맺었지만, 이는 산은이 주도적으로 책임질 영역이다. 산업금융 본연의 역할에 보다 충실한 산은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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