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만기 나눠 '연말 금리베끼기' 막는다
분납·만기다변화로 금융권 유치 과당경쟁 차단
퇴직연금 시장 3년새 115조 ↑…변동성 확대 우려
금융당국이 작년말 '금리 베끼기(커닝 공시), 웃돈 금리' 등의 형태로 일어난 금융권의 퇴직연금 상품 유치 과당경쟁 재연을 막기 위한 방안을 내놨다. 자금이동(머니무브) 위험이 커져 올해 연말에 예상되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솔선해 퇴직연금 분납을 시행하고, 기존 적립금의 상품 만기도 종전 1년 만기 위주에서 다양하게 차이를 둬 자금이동의 쏠림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금융회사 간 유동성 유치를 위해 벌였던 과당 경쟁도 감독규정을 고쳐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26일 '퇴직연금 관련 시장 안정 간담회'를 열고 퇴직연금의 머니무브로 인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에 따라 퇴직연금의 분납과 만기 다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권대영 금융위 상임위원 주재로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과 업권별 금융협회 등이 참석했다.
금융당국은 우선 올해 말 퇴직연금 머니무브 가능성을 점검했다. 퇴직연금 부담금 납입과 적립금 운용상품의 만기가 특정 시점에 집중될 경우 머니무브로 인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보푸라기]퇴직연금 '이율보증보험' 금리가 뒤집힌 까닭(2022년 12월17일)
금융위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19년 22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335조9000억원으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에도 14조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위는 특정 시점 만기 편중도가 낮은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등과 달리 확정급여형(DB)은 자금 쏠림이 급격히 일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시장은 안정적이지만 작년처럼 자금 유치를 위한 고금리 경쟁 등이 나타나 금융사 간 유동성 이동이 급격히 나타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당국 점검 결과 DB형 퇴직연금의 올해 기업 신규 부담금은 38조3000억원으로 이중 25조 6000억원이 12월에 납입될 전망이다. 또 DB 운용적립금 190조8000억원(6월 말 기준) 중 71조4000억원(37.4%)도 12월에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사용자이자 퇴직연금사업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먼저 앞장서서 연말에 예상되는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선 퇴직연금을 납입하는 사용자로서 금융회사들은 12월이 되기 전 신규 납입하는 DB형 퇴직연금 총 부담금(3조2000억원)의 40% 이상을 2차례 이상 분산·분납하기로 했다. 기존 적립금의 12월 만기 도래분(7조7000억원)에 대해서도 만기 다변화도 추진된다.
각 협회는 금융회사들의 분납 및 만기 다변화를 적극 유도·권고하고 계획과 이행 상황을 취합해 금융당국과 공유하기로 했다. 금융회사(은행·보험·증권)들은 퇴직연금 상품 제공 시 1년 만기 외에 다양한 만기 상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고금리 과당경쟁 방지를 위한 규율체계도 확립했다. 지난해 회사채 시장 경색 등으로 일부 금융권에서 유동성 부족이 일어났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은 퇴직연금 유치를 통해 자금조달에 나선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금리 베끼기(커닝 공시), 원리금보장상품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변칙적 원리금보장상품 제공, 고금리 과당 경쟁이 관찰됐다.
이에 금융 당국은 고용부에 등록된 퇴직연금사업자가 아닌 비사업자가 제공하는 원리금보장상품에 대해서도 퇴직연금사업자와 동일한 공시의무를 부여할 계획이다. 또 사실상 원리금보장상품임에도 관련 규제를 회피하고 있는 변칙 파생 결합사채에도 원리금보장상품의 규율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수수료 수취·제공 금지를 통해 수수료(웃돈)를 활용한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 제조 관행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하는 퇴직연금 감독규정도 개정 중이다. 개정 작업은 오는 9월 중으로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관·대기업에도 부담금 분납을 권고할 예정이다. 아울러 분납 유도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도 관계기관 간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금융위는 "연말 납입 예정인 DB형 퇴직연금 신규 부담금에서 금융권(3조2000억원, 12.6%), 공공기관(1조7000억원, 6.6%), 대기업(10조4000억원, 40.4%) 비중 감안 시, 과반 이상(60% 내외)의 신규 납입액을 분산시킴으로써 급격한 자금이동에 따른 시장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권대영 금융위 상임위원은 "앞으로도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상품간·업권간 금융권의 자금이동을 밀착 모니터링해 자금시장의 급격한 쏠림 및 이로 인한 시장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업권과 함께 지속 소통·점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진아 (gnyu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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