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돌본다는 것은…“좋아하는 것을 넘어 존중하는 마음”
‘국내 생추어리의 현황과 과제’ 국회 간담회
생추어리(Sanctuary·생크추어리)의 사전적 의미는 ‘안식’ 혹은 ‘피난처’다. 최근 생추어리는 ‘동물들의 안식처’이란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생추어리는 공장식 축산 혹은 동물 학대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보금자리다.
생추어리 운동은 1986년 미국의 동물권동물권 활동가 진 바우어가 버림받은 양 ‘힐다’를 구조한 뒤 ‘팜 생추어리’(Farm Sanctuary)를 만들며 시작됐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소, 돼지, 닭 등의 농장동물뿐 아니라 밀렵이나 동물 산업의 피해를 입은 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생추어리들이 운영 중이다.
국내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국내 생추어리의 운영 현황을 공유하는 ‘동물을 돌보는 마음, 국내 생추어리의 현황과 과제’ 간담회가 진행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주최하고, 기본소득당 동물·생태위원회 어스링스,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리서치랩이 공동으로 주관한 간담회에는 직접 생추어리를 만들고, 동물을 구조해 돌보고 있는 활동가들이 참가해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다.
✅ “동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연구의 장”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대표적인 생추어리는 ‘새벽이 생추어리’ ‘화천 곰 보금자리’ ‘달뜨는 보금자리’ 등이다. 새벽이 생추어리에는 2019년 경기도 한 종돈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실험 동물이었던 ‘잔디’가 산다. 화천 곰 보금자리에는 동물단체 카라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폐업한 농장에서 구조한 사육곰 13마리가 살고 있다. 동물해방물결이 2021년 구조한 홀스타인종 소 5마리는 달뜨는 보금자리에서 지내고 있다.
기조 발제에 나선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리서치랩 한인정 연구원는 지난 5~6월 생추어리 돌봄 활동가 9명을 인터뷰해 돌봄 활동의 내용과 의미, 이를 보는 사회적 인식 등을 정리했다. 한 연구원은 “현대인이 동물과 함께 사는 공간 대부분이 인간 중심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생추어리에서의 돌봄 경험은 우리가 동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의 장이 된다”고 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대부분 생추어리의 거주 동물을 돌보며 ‘종’으로만 인식했던 동물들의 개성을 알아가고 각 개체의 고유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돌봄을 하며 더 자주, 오랜 시간 동물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이런 과정을 ‘자신이 깨지는 경험’이라고 전했다. 기존 시스템에서 착취와 학대를 당했던 동물들이 비로소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는 활동가들에게도 용기가 됐다는 뜻이다.
✅ 곰, 소, 돼지를 돌보며 하는 생각
발표자로 참가한 세 명의 활동가는 각각 생추어리 설립 배경과 운영 현황, 활동가로서 느낀 점과 현실적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달뜨는 보금자리 추현욱 활동가는 “생추어리를 보면 소들이 우리가 먹는 상품이나 제품이 아닌 생명이란 점을 깨닫게 된다. 동물을 살리는 일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존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동물을 돌보고 있을까.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김민재 활동가는 “사육은 단순히 좋아서 가두어 기르는 것을 말한다면, 돌봄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존중하는 마음이 사육과 돌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천의 곰들을 보며 전국의 모든 사육곰들도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걸 전하고 싶다”고 했다.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새벽이 생추어리 보리 활동가는 “정부가 축산농가를 위해 만든 자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생추어리 가치관에 동의하는 수의사와 의료 체계도 부족하다.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예방적 살처분은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죽음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고 전했다.
생추어리 활동가들은 이외에도 재정적 문제, 육체적·정신적 피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돌봄 노동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 부족도 동물을 돌보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 돌봄 지속 위해선 정책 뒷받침 필요
간담회 참가자들은 생추어리의 지속적인 운영과 지속을 위해선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기본소득당 동물·생태위원회 어스링스 홍순영 위원장은 “생추어리 동물들은 공장식 축산, 웅담 채취 산업 등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동물과 돌봄 활동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지원 정책, 정치가 이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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