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청소시킨 담임, 교체해라”...학부모 악성 민원에도 유명무실한 ‘교원지위법’

홍인석 기자 2023. 7. 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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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침해 당한 교사들, 개별 법적 대응도 힘들어
‘교권보호위원회’ 처분 불복하고 소송 제기
법원 ‘교권 침해’ 범위 좁게 해석하는 경우도
전문가들 “교권 침해 행위 구체화…범위도 넓혀야”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교사모임 주최로 열린 서초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뉴스1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가 있는 법무법인엔 지난 몇 년간 꾸준한 상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상담을 요청하는 주체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아니라 교사다. 학생들 생활지도를 했을 뿐인데도 “학대를 당했다”며 교사를 고소하는 학생과 학부모 때문이다. 법무법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 1주일에 2~3건 상담이 들어오고, 학교 폭력 관련 사안은 하루에 1~2건 상담이 진행된다고 한다. 한 로펌 관계자는 “교권 침해로 상담을 문의하는 교사가 많지만 사건을 맡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렇듯 법률 상담을 의뢰하는 교사들이 많지만, 이들을 보호해 줄 법적 장치는 부족한 실정이다. 우선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교권 침해를 예방하고,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교원지위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법이 미흡하고 현장과도 괴리가 있는 탓이다. 법조계에서는 법적 보완을 통해 교권 침해 사례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6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있다./연합뉴스

◇교육계 병폐 ‘악성 민원’…적법한 절차 거쳐도 결국 ‘재판행’

현행 ‘교원지위법’은 2019년 10월부터 개정 시행됐다. 교권 침해 학생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피해 교사 보호와 지원도 구체화했다. 이 법에 따르면, 교사는 학교별 피해 교사 보호기구인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절차를 밟더라도 교사들이 결국 재판까지 가야 하는 상황을 면치 못 하는 게 현실이다.

2021년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잘못한 학생 이름을 칠판에 적고 벌점을 부과한 뒤 학생에게 방과 후 청소를 시켰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담임교사 교체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인권심의위원회 등 관계 기관에 민원도 여러 차례 제기했다. 학생을 맡기지 못하겠다며 담임교사에게 쉬라는 권유까지 했다. 결국 학교 측은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권보호위원회의를 개최해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도록 권고 조치를 내렸지만 학부모가 ‘교권보호위원회 조치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다.

전주지방법원 행정2부는 학부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행위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교권 침해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어 “담임교사에게 아이를 못 맡기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등교를 거부하거나 담임교사에게 쉬라고 직접 권하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없다”며 “교원의 교육활동에 대하여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당 교사는 긴 소송 과정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게다가 교사를 향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폭언과 악성 민원은 교육 현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대표적 교권 침해에 해당되지만, 교사가 이런 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은 꿈꾸기 어렵다. 학교장 협조 없이 소송을 진행하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교직원공제회 고문변호사를 지냈던 하채은 법무법인 에이파트 변호사는 “학부모를 상대로 고소한 사례를 본 적 없고, 고소해도 입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교권 침해 행위를 넓게 인정한다 해도 현장에서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서 문제 삼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교권 침해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교사가 개인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교육활동 침해’ 범위 제한적…취소 판결도 수두룩

현행 교원지위법상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한 침해 행위’라는 조항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원지위법 제18조는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장은 학생이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한 경우 해당 학생에 대해 조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교권 침해 행위가 ‘교육활동 중’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현행 규정으로 징계를 내리기엔 한계가 있다.

강남구에 위치한 중학교의 3학년생 A군은 2020년 페이스북 페이지에 교사 B씨에 대한 명예훼손 및 비방글을 게재했다. B씨는 “(학생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정당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부당하게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며 교권보호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

교권보호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A군이 B씨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 및 비방글을 작성해 유포한 사실이 인정되고, 교원지위법상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며 출석정지 5일 등을 부과했다. 이에 A군은 법원에 징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한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교원지위법은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한 모욕 등을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교원에 대한 일체의 모욕 등의 행위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며 처분을 취소했다.

26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연합뉴스

이처럼 법원이 교권보호위원회가 학생과 학부모에 내린 징계 처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취소 판결을 내리는 덕분에 교원들이 교원지위법의 보호를 받을 여지는 더더욱 줄어 들고 있다. 이는 교원들을 향한 악성 민원과 폭언이 점차 심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교사 C씨는 대학입학 모의 면접 수행평가 도중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 D군을 두드려 깨웠다는 이유로 D군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D군은 C씨가 “소리가 날 정도로 뒤통수를 때려 잠을 깨우고, 수행평가 과정에서 ‘대학은 갈 거냐’, ‘언제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서 살 거냐’는 등의 취지로 말해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다”며 관할 교육청에 2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교권보호위원회는 C씨가 D군에 대해 한 행위는 정당한 교육활동이므로, D군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신고를 한 행위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며 출석정지와 특별교육 또는 심리치료 이수 30시간 등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D군의 행위가 교원지위법상 교육 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무효”라고 판단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교육 중’이라는 교원지위법상 교권 침해 행위 범위를 넓혀 엄정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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